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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431
한자 古文獻
영어의미역 Old Literatur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갑규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에 전해 오는 칠곡군과 관련된 문서와 서책.

[개설]

고문헌(古文獻)은 일반적으로 문서와 서책을 말하나, 본래는 문(文)은 문서와 서책을 뜻하고, 헌(獻)은 학자들이나 현자(賢者)들의 증언을 뜻한다. 지금은 문서와 서책을 통칭하여 문헌이라 말하고 있다. 고문헌의 종류를 크게 세가지로 분류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나라에서 내린 교지(敎旨), 각종의 소원서, 각종의 완문(完文), 재산상속 문서, 노비 문서, 과거시험의 시권, 상소문, 서간문, 만장, 제문, 혼서지, 호구단자 등 옛 생활 속에서 있었던 문서 모두를 일컫는다. 둘째, 각종 비문들의 금석문, 각종 기록의 연혁서, 상량문, 기문, 봉안문 등 형태가 다양하다. 셋째, 서책으로는 문집, 각종 저서, 족보 등을 꼽을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문집이나 족보에 수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첫째의 경우는 단독 문서 한 장으로 남아 있는 경우여서 보존이 어려웠다.

[교지(敎旨)]

칠곡군 북삼면 인평리, 검간(黔澗) 조정(趙靖)의 종가에는 검간(黔澗) 조정(趙靖)이 문과의 병과에 제 21등으로 급제하였음을 증명하는 사령장의 교지가 한 장 남아 있다. 1605년(선조 38) 4월 8일에 제작된 것이다.

[시권(試券)]

칠곡군 북삼면 인평리, 검간(黔澗) 조정(趙靖)의 종가에는 또한 검간(黔澗) 조정(趙靖)이 1601년(선조 34)에 문과의 병과 16등으로 입격한 시지(試紙) 한 장과 1605년(선조 38) 3월에 증광문과(增廣文科) 전시(殿試)의 21등으로 합격한 시지(試紙) 한 장이 각각 남아 전한다.

[서당과 종택에 남은 고문헌들]

정구(鄭逑), 이윤우(李潤雨), 이원경(李遠慶) 세 사람을 향사(享祀)한 사양서당(泗陽書堂)에 관한 각종기록이 남아있다. 진사에 입격한 장경우(張慶遇)는 정묘호란 때 의병장을 지냈고 1654년(효종 5)에 영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화산서당(花山書堂)을 지어 후진을 양성하였다. 훗날 화산서원으로 승격되었고 각종관련 문헌들이 흩어져있다. 장경우의 저서는 『법천설(法天說)』, 『선악적서(善惡籍序)』 등이 남아있다. 왜관읍 석전리에는 묵헌종택이 있다. 귀암(歸巖) 이원정(李元禎)의 아들 이한명(李漢命)이 건립하였다. 5대손 묵헌(黙軒) 이만운(李萬運)은 ‘퇴계-한강-귀암’의 학맥을 이은 석학이었으며 『증보동국문헌비고(增補東國文獻備考)』 등을 편찬하였다.

[서원에 남은 고문헌들]

기산면 평복리투암(投巖) 채몽연(蔡夢硯), 백포(栢浦) 채무(蔡楙),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을 향사하는 소암서원(嘯巖書院)에 관련된 문헌들이 남아 있다. 석적면 중리에는 기촌(岐村) 장룡한(張龍翰), 진사 장류(張瑠)를 향사하는 봉양서원(鳳陽書院)이 있다. 장류는 우암 송시열의 제자이며 문집 3권이 남아 있다.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가 묘갈명을 지은 비문이 있다.

[효열행각(孝烈行閣)에 남은 고문헌들]

동명면 봉암리 태봉산에는 일문사절각(一門四節閣)이 있다. 사절은 조선 중기 충신 이일영(李逸英), 이일로(李逸老) 형제와 형제의 부인 고령박씨풍양조씨이다. 병자호란에 목숨 바친 이들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왜관읍 삼청리에는 열녀 성산이씨 정려각이 있다. 송발(宋發)의 아내였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겁탈하려하자 절명하였으며 정려각의 기록이 남아있다. 지천면 심천리에는 현풍곽씨 쌍렬비각이 있다. 도사(都事) 벼슬을 한 이심옥(李心玉)의 부인 현풍곽씨와 딸로 곽재기(郭再祺)의 부인 광주이씨를 정표한 쌍렬비각이다. 임진왜란 때 겁탈하려는 왜군을 물리치고 절명하였다. 낙촌(洛村) 이도장(李道長)이 지은 비문과 관련기록이 남아있다. 이외에도 김해김씨 효부비, 열부 배씨의 시(詩), 열녀 아주신씨(鵝洲申氏)의 정력각기, 효부 경주이씨의 효행표창비 등이 있다.

[어필각의 고문헌]

북삼면의 숭오리에는 사미헌 장복추가 지은 어필각 상량문과 방산(舫山) 허훈(許薰)이 지은 어필각기가 남아 있다. 이외에도 문집과 족보들이 많이 있으며, 미발굴 고문서가 아직 많이 보존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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