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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466
한자 張世益
영어음역 Jang Seik
이칭/별칭 익재(益哉),일재(逸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헌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경상북도 칠곡군
성별
생년 1652년연표보기
몰년 1722년연표보기
본관 인동
대표관직 삼수부사(三水府使)

[정의]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익재(益哉), 호는 일재(逸齋).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고려 초에 인동에 정착한 후 고려 중기에 분파를 시작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25개 파가 전국 각지로 분파되어 나가고 5개파가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을 지켜 장씨의 연원을 이루고 있다. 진사 장신손(張信孫)의 후손이고 장홍의(張鴻儀)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평산신씨, 부인은 창녕조씨이다.

[활동사항]

1676년(숙종 2)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해주영장·삼수부사 등을 역임했다. 1712년(숙종 38) 4월에 청나라의 북경총관과 삼강[압록강·토문강·흑룡강]의 국경선을 설정할 때 도차사원(都差使員)으로 파견되어 강의 발원 지점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다. 임금께서 수놓은 옷 한 벌과 말 한 필·그림을 하사하고 공적을 표창했다. 1718년(숙종 44)에 통정대부로 함경도 갑산부사겸토포사에 도임하여 굶주리는 백성을 곡식을 주어 구하는 등 많은 선정을 베풀었고, 1720년(숙종 46)에 진주영장으로 벼슬자리를 바꾸게 되자 갑산 읍민들이 길을 막고 만류하여 재임의 특전을 받았다. 1722년에 충주영장 재임 중 사망하였다. 청백선치(淸白善治)로 이름이 났다.

[묘소]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여남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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