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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493
한자 李聃命
영어음역 Yi Dammyeong
이칭/별칭 이로(耳老),정재(靜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헌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성별
생년 1646년연표보기
몰년 1701년연표보기
본관 광주
대표관직 이조참판

[정의]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本貫)은 광주(廣州). 자는 이로(耳老), 호는 정재(靜齋). 고려 때 판전교시사(判典校侍事) 이집(李集)을 중흥시조로 하고, 승사랑(承仕郞) 이지(李摯)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광주이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귀암 이원정(李元禎)이고, 어머니는 벽진이씨로 좌부승지 이언영(彦英)의 딸이며, 부인은 전주이씨이다.

[활동사항]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출신의 문신으로 허목(許穆)의 문하로서 1666년(현종 7)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670년 별시문과에 아원으로 급제, 성균관 학유가 되고 이어서 봉상시봉사·승정원주서를 거쳐 홍주목사로 나갔다. 경신대출척으로 파직되어 아버지 이원정의 유배지 초산에 따라갔다. 1683년(숙종 9)에 다시 복관되어 우승지·전라도관찰사·부제학·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옥당(玉堂)에 있을 때는 강론하여 밝힘이 적절하여 숙종이 항상 강관(講官) 중에서 제일이라고 하였다.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에는 큰 흉년을 만나 부역을 모두 면제해 주고 죽을 끓여서 굶주린 백성들을 진휼(賑恤)했다. 선정을 베풀음에 도민들이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영사비를 세웠다. 외직(外職)에 있을 때 견문한 사실과 군정(軍政)·호포(戶布)·시재(試才) 등의 시폐를 들어 시정책을 강구한 상소를 올렸으며, 충주의 관둔전(官屯田)을 공주에 넘기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하였다. 구휼(救恤) 때의 기록인 『진정총람(賑政總覽)』은 도지정문화재가 되었다.

[저술 및 작품]

『진정총람(賑政總攬)』, 『도안기(道眼記)』, 『서전차의(書傳箚疑)』, 『기뇌홍(記雷虹)』 등의 많은 잡저(雜著)를 남겼고, 저서로는 『정재문집(靜齋文集)』 8권이 있다.

[묘소]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이 묘갈을 지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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