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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600
한자 李柱天
영어음역 Yi Jucheon
이칭/별칭 이능(爾能),낙저(洛渚)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헌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성별
생년 1662년연표보기
몰년 1711년연표보기
본관 벽진
대표관직 지평(持平)

[정의]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벽진, 자는 이능(爾能), 호는 낙저(洛渚). 벽진장군(碧珍將軍) 이총언(李悤言)을 시조로 하고, 진사 이인손(李麟孫)을 칠곡 입향조로 하는 벽진이씨로, 완석정(浣石亭) 이언영(李彦英)의 증손이고, 덕봉(德峯) 이해발(李海潑)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풍양조씨이고 부인은 안동권씨이다.

[활동사항]

1662년(현종 3)에 태어나서 1687년(숙종 13)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691년(숙종 17)에 증량문과 병과에 급제했다. 한원(翰苑)에 뽑혀 들어가 여러 유신들과 입시(入侍)하여 시구(詩句)를 지어 나아가니 특별히 술을 내리고 책을 하사하는 은총을 입었다. 얼마 되지 않아 봉교(奉敎)에 임명되었으나 대교(待敎) 겸 어사(御史)에게 밉게 보여 자기와 주장이 다르다고 복명하여 뒤에 소환되었다. 1703년(숙종 29)에 고산찰방(高山察訪)에 임명되니 역(驛)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 역마을에서 역마을로 짐·문서 따위를 보내던 일을 보는 사람들이 송덕비를 세워 덕(德)을 기리었다.

사서(司書)를 역임하고 벼슬이 지평(持平)에 이르렀다. 1694년(숙종 20)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이 날로 잘못되어 가는 것을 보고는 용산(龍山)에 물러나 거처하면서 경서(經書)로 스스로를 즐기며 후진을 가르쳤다. 칠곡군 왜관읍 석전에 살면서 한림(翰林)때 기록한 사초(史草)를 자고산(鷓鴣山) 밑 운수암(雲水菴)[이등림·이언영 부자가 임시로 거처하던 곳]에서 정사(正寫)하였는데, 현감 이해준(李海準)이 부근 개울가 바위에 “한림(翰林) 수사동(修史洞)”이라 새겨 그때부터 수사동이라 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대성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학전(學田) 이기호(李起鎬)가 비문을 짓고, 연단(煉丹) 김주덕(金周悳)이 묘지(墓誌)를 지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3.24 본관 오류 수정 광주를 벽진으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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