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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741
한자 李壽澤
영어음역 Yi SutaEK
이칭/별칭 이각(李覺),덕윤(德潤),일몽(一夢)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윤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면 석전동 622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1년 2월 17일연표보기
몰년 1927년 7월 4일연표보기
본관 광주

[정의]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891년 2월 17일 칠곡군 왜관면 석전동에서 태어나, 약목(若木)에 있는 동락의숙(同樂義塾)과 서울 보혜학교(普惠學校)를 수학하였다. 1919년에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여, 1920년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게 하였다. 1924년에 체포되어 복역 중에 병보석 되었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1927년에 순국하였다.

[활동사항]

1913년 경상남도 밀양(密陽)에서 항일단체 일합사(一合社)를 비밀 결사하였으나 동지들이 체포되어 중단되었다. 같은 해 경상북도 풍기(豊基)에서 채기중(蔡基中) 등과 함께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을 조직하고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에 만주(滿洲) 길림(吉林)으로 가서 11월 10일에 김원봉(金元鳳), 이종암(李鐘岩) 등과 함께 의열단을 조직하고 귀국하였다. 국내에서 자금 조달과 무기 관리를 맡아, 1920년 3월에는 밀양과 진영(進永)으로 무기를 들여오려다 발각되어 피신하면서, 같은 해 1920년 12월 27일에 의열단의 밀양경찰서 투탄 거사에 관여하고, 부산에서 잡혔으나 7일 동안 벙어리 행세를 하여 풀려났다. 이후에도 군자금 모집 활동을 계속하다. 1924년 1월 25일 체포되어 같은 해 5월 13일 경성지법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언고받고 복역 중에 고문의 여독으로 병보석되었으나 1927년 7월 4일에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66년 6월 6일에 세운 ‘일몽이수택선생순국기념비’가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관호리 산 63번지에 있었으나, 2003년 10월 8일 왜관읍 석전리 동산재(東山齋)로 옮겼다. 2003년 11월 12일 새로 ‘순국의사일몽이수택선생기념비(殉國義士一夢李壽澤先生紀念碑)’를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애국동산에 세우고, 매년 광복절에 추모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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