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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776
한자 張東植
영어음역 Jang Dongsik
이칭/별칭 욱여(昱汝),청강(靑崗)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각산리 997|중국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김윤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광복군
출신지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각산동 997[현 기산면 각산리]
성별
생년 1923년 10월 20일연표보기
몰년 1992년 2월 23일연표보기
본관 인동
대표경력 내무부 치안국장, 제9대 국회의원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923년 10월 20일에 칠곡군 약목면 각산동[현 기산면 각산리]에서 태어났다. 약관에 광복군에 입대하여 징모(徵募) 제3분처에서 지하공작 활동을 했으며 광복을 맞아 귀국한 후에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치안국장과 국회의원을 지냈다.

[활동사항]

1944년을 전후로 중국 각지의 일본군 점령지를 탈출해 온 광복군 동지 박승학(朴承鶴), 김해일(金海一) 등 수십 명과 한국독립촉진회(韓國獨立促進會)를 조직하였다. 귀대 후 중국군 제3전구 충의구국군(忠義救國軍) 총지휘부 참모처에 남경(南京), 무호(蕪湖) 등지의 정보 수집과·초모공작(招募工作)을 맡아 청년 수십 명을 모집해 광복군 징모 제3분처(徵募 第3分處)로 보내고 특히 무호 지역 일본 군부대의 한적사병(韓籍士兵) 2백여 명을 반전(反戰)공작하여 탈출·유도하였다. 1944년 8월 23일부터 광복군이 임시정부에 예속되면서 징모 제3분처 120여 명의 요원들과 초모활동을 하던 중에 광복을 맞았다. 해방 후에는 일본군 동포 사병의 편입과 교포의 귀국 지원 활동을 하였다.

귀국 후에 국민대학교 법률학부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내무부 치안국장을 지냈다. 퇴임 후에는 치안문제연구소장에 재직하면서 제4공화국의 제9대 국회의원(유정회)을 지냈으며, 한중문화친선협회 이사와 세계연방한국총본부 부총재를 역임했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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