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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782
한자 張鎭弘
영어음역 Jang Jinhong
이칭/별칭 장재환(張在煥),준극(俊極),창려(滄旅)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중국 만주|러시아|일본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윤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옥계동(文林) 352[현 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
성별
생년 1895년 6월 6일연표보기
몰년 1930년 7월 31일[음 6월 6일]연표보기
본관 인동

[정의]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895년(고종 32) 6월 6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옥계동 문림(文林)마을에서 장성욱(張聖旭)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에 만주·러시아 등지에서 한인들을 군사 훈련을 시켰으며 1927년 조선은행대구지점에 폭탄을 터뜨리고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자, 1930년 7월 31일에 옥중에서 자결·순국하였다.

[활동사항]

인명학교(仁明學校)에서 유학자 장지필(張志必)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1916년에 조선보병대를 제대한 후, 광복단(光復團)에 가입하였다. 1918년 만주로 가서 광복단 동지들과 무장투쟁하기로 하고 러시아령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청년 80여명을 군사 훈련시켰다. 이듬해 1919년에 귀국하여 각지의 3·1운동 실태와 일제의 잔학상을 조사한 것을 미 군함의 승무원인 김상철(金相哲)에게 주어 각국에 알리도록 하였다. 1925년 대구에서 이정기(李定基)와 안동 출신의 이원기(李源祺)·이원록(李源祿)[애국시인 이육사]·이원유(李源裕) 형제 등과 비밀결사를 하고 1927년 3월경부터 광복단원 이내성(李乃成)의 소개로 일본인 폭탄 전문가에게 제조 기술을 익힌 후 다이너마이트 뇌관과 도화선을 구했다. 같은 해 10월 18일 아침에 대구의 여관에서 꿀 선물상자로 위장한 폭탄 4개를 점화한 후, 사환에게 조선은행대구지점·경북도청·경북경찰부·식산은행대구지점 등에 배달시키고 도피했다. 11시 30분경, 먼저 간 조선은행에서 1개가 적발되어 제거하던 중에, 나머지 3개가 폭발하여 건물이 파괴되고 경찰과 직원 등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도피 중에도 11월에는 안동에서 일족인 장용희(張龍熙)와 재기를 도모하였다.

1928년 1월, 범인 색출에 다급해진 경찰은 대구의 결사원이던 이정기·이원기·이원록 등 항일 인사 8명을 진범으로 몰아 재판에 회부하였다. 이때 이원기는 고문으로 불구가 되고, 시인 이원록은 수인번호 64를 자신의 호(號)로 정했다. 1928년 2월에 일본 오사카로 가서 동생 집을 거점으로 재기를 도모하던 중, 1929년 2월 14일에 추적해 온 경북경찰부의 형사들에게 체포되었다. 1930년 2월 17일에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폭발물취체벌칙·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과 살인예비·미수죄 등으로 사형선고, 4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도 사형, 7월 21일에 고등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되어 사형이 확정되었다. 같은 해 7월 31일 밤, 평소 “일제에 죽느니 내 손으로 죽겠다”라고 말하던 대로 옥중에서 자결·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49년 6월 21일에 인동서부초등학교에서 추도제(追悼祭)를 거행하였다. 1953년 7월 31일에 ‘순국의사장진홍선생기념비(殉國義士張鎭弘先生紀念碑)’를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의 애국동산에 세워, 10월 16일에 추도식을 거행하였다. 1995년 6월 17일에 기념비에서 추모제를 처음으로 올렸으며, 매년 광복절 추모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2001년 11월 24일에 ‘순국의사장진홍선생지상(殉國義士張鎭弘先生之像)’ 동상을 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 소공원에 세우고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2008년 9월 30일에 칠곡군 석적읍 남율 2리 하산선영(霞山先塋)의 묘역 정화 사업을 준공하고 추모식을 거행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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