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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836
한자 遊鶴山戰鬪
영어의미역 Battle of Yuhaksan Mountai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학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6·25 전쟁
발생(시작)연도/일시 1950년 8월 13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50년 8월 13일연표보기

[정의]

1950년 8월 13일부터 23일까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학산리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개설]

유학산과 동쪽 줄기 ‘837-790-674’고지 일대는 높이 8백m 이상의 분수령 능선이 동서로 4㎞나 뻗어 있는 고지로서, 고지의 북측 경사면은 경사가 완만하여 정상에 오르기 쉬운 반면, 남쪽 경사면은 북쪽과 달리 가파르다. 특히 등고선 7백m 지점에서 정상까지는 50m 높이의 암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계곡의 시류점이 거미줄과 같이 엉켜 있다. 유학산의 고지는 5번도로와 25번도로를 통해 대구로 들어 갈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지점이다. 따라서 고지는 다부동 전투에서 최고의 요지이다.

[발단]

국군 제12연대는 사단 일선 중앙의 숲데미산[수암산]에서 유학산 일대를 담당하여, 8월 13일 아침 왼쪽으로부터 제2대대를 숲데미산에서, 제3대대를 유학산 주봉인 839고지에 각각 배치해놓고 제2봉인 837고지에는 제1대대를 배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837고지는 국군 1대대 병력이 배치되기 전에 북한군이 먼저 점령해 있었다. 그 때문에 837고지 전투유학산 일원 전투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였고, 국군의 피해도 컸다.

[경과]

1950년 8월 22일에 우측 다부동의 제11연대 제3대대는 674고지를 탈환한 후 위봉(威鳳) 골재까지 진출하였다.

[결과]

8월 23일 2시 무렵 제11연대 제1대대는 837고지를 탈환한 후 820고지를 넘어가 제3대대와 만나고, 북쪽 경사면 5~6능선까지 진출하여 북한군 패잔병을 제압하였다. 같은 날 새벽 6시 무렵 좌측의 제3대대도 유학산 주봉을 탈환하였다. 이로써 1950년 8월 13일부터 23일까지 벌어진 혈전에서 국군이 유학산을 탈환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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