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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친곡 십이장」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1850
한자 思老親曲十二章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기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조|민요
작가 이담명(李聃命)[1646~1701]
창작연도/발표연도 1694년~1699년 사이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출신의 이담명이 유배지에서 팔순 노모를 그리며 지은 노래.

[개설]

정재 이담명미수 허목에게 사사하여 24세에 대과에 아원으로 급제하여 수찬, 교리, 도승지, 공조참판, 영남관찰사, 대사헌, 대사성, 부제학,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부친인 귀암 이원정이 참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원통하고 억울하여 부친의 피묻은 적삼을 1688년에 기사환국으로 복권될 때까지 10년 동안 입고 지냈다. 이담명은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로 창성으로 6년간 유배되었는데 “생사는 두렵지 않으나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멀리 떠나니 간장이 끊어지는 것 같다.”고 하며 유배지에서 팔순 노모를 그리며 「사로친곡십이장」을 한글로 지었다. 여기에 가락을 붙인 것이 「사로친곡십이장」이다.

이담명은 창성에 유배되었다가 3년 후에 충청도 남포로 옮겨지고 2년 후에 풀려났다. 요승(妖僧) 처경(處瓊)소현세자의 유복자임을 자처한 일이 허황됨을 밝혀 다스렸으며, 호포제(戶布制)의 의견이 일어났을 때는 극력 반대하는 등 부세(賦稅) 문제 등의 국정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남인 과격파에 속하는 인물로 숙종 초년에는 왕실 전례를 그르친 송시열(宋時烈)의 죄를 종묘에 고하자는 공세를 폈고, 경신환국 후 복귀되었을 때는 당시 사건을 주동했던 서인(西人) 인사들을 처벌하는 데 앞장섰다.

[구성]

「사로친곡십이장」의 갈래는 평시조이며, 고향에 계시는 노모에 대한 그리움의 정을 12장으로 나누어 구현한 연시조이자 서정시이다. 그러나 한시구를 인용한 면과, 3연 종장의 파격, 4연과 12연 초장·중장의 파격 등 시조와 가사의 혼합을 보이는 듯한 형식이 있다. 다시 말하면 좀 더 자유로운 시조의 형식이거나 시조 형식에서 이탈한 변격이 취해진 자수구가 많다.

[내용]

「사로친곡십이장」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노친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작품이다. 8연에서 '천애절역의 새해를 네 번 보니'로서 유배온 지가 4년, 흘러간 세월 동안 노친을 봉양치 못한 안타까움을 십이장의 연작으로 읊은 시조는 드문 것이다. 6연에서 '기러기 아니니 편지를 뉘 전리/시름이 득하니 꿈인 이룰손가'는 소식도 듣지 못하고 꿈도 가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다. 8연은 학발의려의 모친이 자식을 기다리는 모습을 구체화했다. 12연은 '까치'와 '거미'의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서 노모를 만나려는 뜻을 걸었다. 대개 유배지의 작품이 자신의 탄식과 임금에 대한 그리움으로 완세불공(玩世不恭)하는 경향인데 비하여 자책을 앞세운 것, '내 죄를 아옵거니 流竄이 薄罰이라/致處 聖恩을 어이야 갑올고/老親도 플텨 혜시고 하그려 마오쇼셔'하였다. 이미 아버지에 대한 원한을 갚은 작자는 오로지 모자지정만 살필 뿐이다. 그러므로 지은이의 자세가 온건하며, 여성적인 사모의 목소리로 차분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십이장의 종장 종결 어미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끝으로 시조의 형식상 초장에다 표현하지 못할 심정은 5연과 9연에서 한시구를 인용하여 뜻을 함축시켰다. 그 결과 이 시조는 함축적인 시인과 함축적인 독자로 연결되고 있다.

1. 봄은 오고  오고 풀은 플으고  플으

나도 이 봄 오고 이 플 프르기 티

어 날 故鄕의 도라가 老母 보오려뇨

2. 親年은 七十五 ㅣ오 嶺路 數千里오

도라갈 期約은 가디록 아다

아마도  업슨 中夜의 눈물 겨워 셜웨라.

3. 길히머다 다 나면 아니가랴 터냐

물이 파려다 면 아니례랴 터냐

가고 녠 後ㅣ면 老母歸寧 일이 遄臻于衛언마

不瑕유해라 이를 저퍼 노라.

4. 謫裡光陰은 四年이 셔되고 天外家鄕은 萬里예 가니

몸이 못 가거든 奇別이나 드야

아리 섭 陟屺瞻望을 말랴  어들손가

5. 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 難將寸草心 報得三春暉

人情이 懇切니 鬼神인들 아니울가

지금의 이 시 이 은 읇흘수록 슬페이라

6. 기럭이 아니 니 片紙를 뉘 傳리

시름이 하니 인 이룰손가

每日의 老親 얼굴이 눈의 森森야라

7. 東山의 올라 보니 故國도 멀셔이고

太行이 어드메오 구름이 머흘레라

갈록 愛日寸心이 如臨 深淵 여라

8. 天涯絶域의 새  네 번 보니

寸草心情은 니도 말려니와

아마도 鶴髮倚閭 어이야 慰勞고

9. 有難赦罪 難醫疾 爲不忠臣 不孝男

蘇齋 이 句ㅣ를 어제록 볼쟉시면

이 아니라 날을 니 말 이로쇠

10. 내 罪 아옵거니 流竄이 薄罰이라

致處 聖恩을 어이야 갑올고

老親도 플텨 혜시고 하그려 마오쇼셔

11. 하이 놉흐시나 를 드르시

日月이 갓가오샤 下土의 비최시

아리타 우리 母子之情을 피실제 업오랴.

12. 가치 울거나 거미 리거나

燈火 열리거나

아마도 반가온 奇別을 어 드려뇨

[의의와 평가]

화자가 유배지에서 지극한 효성으로, 애절한 사모의 정을 읊은 이 노래는 시조문학 사상 귀중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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