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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피신처였던 동명동부초등학교를 다녔던 3대의 추억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C030103
분야 지리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남창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엄윤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 232번지에 위치한 동명동부초등학교남원리 주민을 비롯해 동명면 5개 동 사람들의 유년을 풍요롭게 했던 장소이다. 특히 남창마을에 거주하는 사공태 옹 집안 3대에게는 더욱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어린 장소이기도 하다. 1954년 남창마을에 수해가 났을 때 수해민들이 임시 거처로 모여 지내던 곳이기도 해서 특히나 남창마을 사람들한테는 소중한 장소이기도 한 동명동부초등학교는, 2009년 현재 인구가 눈에 띄게 감소하면서 유치원생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 53명의 작은 학교로 변했지만, 한때는 학생수가 400여 명에 이르러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했었다.

동명동부초등학교는 1936년 4월 간이학교로 설립되었는데, 당시 남창마을 안에는 심상순[심금조 할머니의 부친] 옹이 지도하던 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그 무렵 간이학교에 다녔던 사공태 옹은 특히 못된 일본 선생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였다.

“근데 간이학교 선생님이 정신이 좀 이상해서 성남(가산산성 남문)에서 동명초등학교 요새는 길이나 좋지, 비오면 저 산으로 해가 나이 여덟 살 먹었는데 일제 때 왜놈 선생인데 지각하믄 요새 매같이 팍 때리면 불을 켜요. 거기서 도시락을 옛날에 벤또커는 납작한 거기다 밥 푸고 김치 넣어가지고 어깨죽지 둘러메고 안 뚜드려 맞을라고 뛰면 낮에 도시락을 열어보면 전부 김칫물이 섞여가지고…….”

1943년 간이학교는 공민학교로 승격하였고, 해방 후인 1949년 제1회 졸업생을 맞게 된다. 사공택상 씨는 동명동부초등학교 20회 졸업생으로 학교에 대한 추억이 조금 더 풍요롭다. 기성1리과 기성2리, 득명리, 남원1리, 남원2리 아이들이 다녔던 동명동부초등학교는 실상 온 마을 사람들의 학교였다고 한다.

동부초등학교가 80년대, 90년대 운동회 겉은 거 할 때는 굉장했어요, 서지를 못했어요, 사람들이. 한 달씩 연습을 했어요. 마을에서 제일 잘 뛰는 사람 뽑아가, 5동씩 달리기를 하면…… (중략) 초등학교 학생들 운동회가 마을의 큰 행삽니다.”

마을잔치를 방불케 하는 운동회의 모습을 그려 보니 동명면을 울렸을 힘찬 응원의 함성이 만국기와 함께 흩날리는 것 같다. 사공택상 씨는 1990년대 한 사람의 학부형으로서 동명동부초등학교를 갔었을 것이다. 3대가 한 마을에 살다 보니 맏딸 역시 44회 졸업생이고, 계속해서 남창마을에 살 계획이라고 하니 4대째도 동명동부초등학교를 다니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더구나 초등학교에는 이 3대를 가르칠 뻔했던 선생님도 계셨다는데, 사공택상 씨의 딸이 입학하던 시기에 다른 학교로 교장 발령을 받고 떠나는 바람에 그 기회를 놓쳤다며 아쉬워하신단다. 가끔씩 그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는데, 요즘도 아버님 안부를 물어 오곤 하신다며, 아무리 제자라도 꼭 존대를 해주신다는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비추신다.

동명동부초등학교 동창회는 기수별로 운영되고 있는데, 1년에 한 번 열리는 동창회에는 아무리 못해도 최소 30명은 참석한다고 한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학생 수 역시 줄어들어 학교가 폐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동창회에서도 많은 애를 쓰고 있단다. 마을의 추억이 담겨 있는 이 학교가 4대, 5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오래오래 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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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동부초등학교동창회 모습

[정보제공]

  • •  사공태(남, 1933년생, 남창마을 거주)
  • •  사공택상(남, 1955년생, 남창마을 거주, 남창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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