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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커 보국대로 끌려가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D030201
분야 지리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3·4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순하

진주강씨 박사공파 후손인 강재희 옹은 웃갓마을에서 키 큰 할아버지로 통한다. 지금도 손자들에게 족보며 문중 공부를 가르치신다는 할아버지는 하루 4~5시간 게이트볼을 치시고도 다리에 힘이 없어 다리 힘을 길러야 한다며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를 구입해 타고 다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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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고 있는 강재희 옹

강재희 옹은 3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의 3형제 중 큰아들은 아들이 없는 큰아버지의 양자로, 또 둘째 아들인 할아버지는 둘째 큰아버지의 양자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슬하에 3남2녀를 둔 할아버지는 형님과 함께 웃갓마을을 지키고 계신다.

트랙터며 콤바인이며 없는 농기구 없이 농사를 짓고 계시다는 할아버지는 논농사만 20마지기인 13,223.2㎡을 짓고 계신다. 2009년 현재는 짓고 있지 않지만 예전에는 특수작물로 수박농사를 많이 지어서 주로 칠성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손이 많이 가는 특수작물보다는 기계로 짓는 논농사가 훨씬 수월한 편이라서 현재는 논농사 위주로 생계활동을 하고 계신다.

한국전쟁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할아버지는 키가 커서 보국대에 끌려가게 되었단다. “여기 칠곡 대구 북부아이가(잖아). 거기서 피난생활을 하다가 그때 내가 열일곱 살인데 키가 크고 어리어리하니깐 동민증(지금 주민등록증) 내놔라 하는 기라(거야). 내놓으니깐 열일곱 살 맞거든. 그래서 군에는 못 가고 보국대 끌려갔어. 거기 가니깐 총소리가 파파파박 나는 기라(거야). 그래서 무서워서 도망을 쳤어. 어두우니깐 나는 방향도 모르고 뛰(어)갔지. 계곡 있는 데로 떨어져서 부상 입고. 거기서 옷 다 째(뜯어)지고 팔에 피나고. 근데 거기서 사람 만나서 보니깐 아군이다. 그래서 내보고 가라고 하는 거라. 그래서 다시 가서 피난 생활했지.”

그렇게 총소리에 놀라 도망을 치다 아군을 만나 다시 피난생활을 했는데, 전쟁이 끝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나라가 어수선하자 부모님은 강재희 옹의 혼인을 서두르게 된다. 그리하여 스물 살에 지금 성주댁이라 불리는 성주 살던 할머니와 결혼하게 된 할아버지는 다음 해 춘천 505수송단에서 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36개월간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를 하게 된다.

[정보제공]

  • •  강재희(남, 1920년대 생, 웃갓마을 거주, 진주강씨박사공파문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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