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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운고 장시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E020203
분야 지리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1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순하

장시표(張時杓)[1819~1894]의 초명은 응표(應杓), 호는 운고(雲皐)이다. 여헌(旅軒)의 후손으로 인동부 진평리에서 장봉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증이조참판 장보에게 입양되었다. 파리장서를 초안한 유림단 대표 회당 장석영이 아들이다.

장시표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 14~15세 때 벌써 경서(經書)에 통달했다. 1849년(헌종 15) 문과에 급제하여 부정자(副正字), 주서(注書), 전적(典籍), 정언(正言), 지평(持平), 장령(掌令), 집의(執義), 교리(郊理), 수찬(修撰), 응교(應敎), 장락원정(掌樂院正), 사복시정(司僕侍正), 동부승지(同副承旨) 등 옥당(玉堂)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외직으로 현풍현감 및 함경도의 북청현감으로 나아갔다.

그 후 병조참의를 거쳐 1886년(고종 23) 공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부임치 않았으며, 이어 가선대부에 올라 형조참판을 역임하고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북청현감으로 있을 때 향교(鄕校)의 교폐(校幣)를 바로잡고 흥학(興學)의 치적이 많아 당시 북청읍민들이 북청향교 및 만경재(萬景齋)의 두 곳에 공의 공적을 기리는 뜻으로 흥학비(興學碑)를 세웠고, 또한 공이 북청을 떠나자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고 전한다.

내직에 있을 때는 경연에 입시하여 글의 뜻을 설명하고 행하는 것이 밝고 유창하므로 왕이 참된 시강(侍講)이라 칭송하였다. 묘소는 대흥산에 있는데,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가 묘비문을 지었다.

참찬(參贊) 곽종석(郭鍾錫)이 지은 신도비문(神道碑文)이 문집에 실려 있다.

[정보제공]

  • •  장인희(남, 각산1리 거주)
  • •  장상진(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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