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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233
한자 農事日錄
영어의미역 Nongsaillok Farming Diary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영농 일지
관련인물 이담명
저자 이담명
저술연도/일시 1680년연표보기~1684년
편찬연도/일시 1684년 이후연표보기
간행연도/일시 1684년 이후
사용활자 묵서
가로 19.5㎝
세로 38㎝
소장처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이필주 댁(宅) 소장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칠곡군 출신의 이담명이 쓴 영농(營農) 일지(日誌).

[개설]

『농사일록』이담명[1646~1701]이 영주(榮州)에서 4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면서 쓴 영농 일지이다. 당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농촌 실상과 이앙법(移秧法)의 보급과 그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농서(農書)이다.

[편찬/발간 경위]

이담명이 살았던 17세기 후반은 전 세계적으로 소빙기의 내습으로 인해 기상이변이 일어나 농업이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담명은 당시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하면서 재해를 구제하는 정책인 진정(賑政)에 힘쓰고 선정을 베풀었다. 외직(外職)에 있을 때에 견문한 사실과 군정(軍政)·호포(戶布)·시재(試才) 등의 시폐를 들어 시정책을 강구한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또한 두 차례나 유배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의 영농에 관심이 많았다.

이담명은 세거지였던 칠곡 석전에 부·모·처변과 매득 및 개간을 통해, 그리고 상행위를 통해 지주로서의 공고한 기반을 갖고 있었다.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관직이 삭탈되었다가 1682년 석방, 복관된 뒤 고향 칠곡으로 돌아가지 않고 경상북도 북부 지역인 영주에서 4년간(1682~1686) 지내면서 날마다 영농일지를 썼는데, 그것이 바로 『농사일록』이다.

[서지적 상황]

『농사일록』은 가로 19.5㎝× 세로 38㎝의 크기이다. 목활자본의 시헌력(時憲曆)에 기록하였다. 즉, 1680년부터 1684년의 4년간 책력의 월일에 따라 기록하였는데, 일록은 책력의 해당 일자 사이에 기재하였고, 다른 기사는 책력의 이면과 표면의 상단에 기입하였다.

[구성/내용]

경상북도 북부 지역인 영주 금강리(金剛里)에서 4년간 거주하면서 쓴 영농 일지이지만 『농사일록』에는 칠곡에서의 전민(田民) 소유 관계 기록은 물론 칠곡에서 지주로서 노비와 용인을 사역시켜 자신의 소유지와 병작지를 경영하던 경험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영주 지역이 속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전답(田畓)은 웬만한 가뭄에도 잘 마르지 않는 작은 개천의 양안을 따라 분포되어 있었기 때문에 천방과 제언 등의 관개시설을 설치하기에 편리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입지조건을 가진 영주의 금강리에 거주한 이담명은 수도·노평·막조·신방 등지에 있던 논에 모두 이앙을 실시하였다. 밭의 경우 보리와 속(粟), 태(太)를 간종하고 목화도 재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17세기 소빙기의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한 지주들의 영농 방법과 상행위 등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농사일록』은 조선 후기 이앙법의 보급 과정과 한전(旱田) 농업의 노동 과정을 알려주는 농서(農書)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다. 17세기의 사회·경제사 관련 사료가 많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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