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돌다리 남석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자료 ID GC002M0305
설명문 청주의 상당구와 흥덕구를 잇는 무심천.무심천은 청주를 동서로 나누는 큰 도심하천이다. 무심천에는 많은 다리가 건설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 전에 만들어진, 그러나 지금은 볼 수 없는 다리가 있다. 그것도 작은 다리가 아니라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었던 돌다리 남석교, 청주의 천 년 역사를 대표하지만 지금은 묻혀져 있는 돌다리 남석교.
채록 청주의 상당구와 흥덕구를 잇는 무심천. 무심천은 청주를 동서로 나누는 큰 도심하천이다. 무심천에는 많은 다리가 건설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 전에 만들어진, 그러나 지금은 볼 수 없는 다리가 있다. 그것도 작은 다리가 아니라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었던 돌다리 남석교. 남석교를 찾아가 보기로 하자. 이곳은 옛날 청주읍성의 남문, 청남문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육거리 시장의 중심부이며 청주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300미터 지점에 남석교가 있었다. 청주에서 가장 큰 육거리 시장의 원래 이름이 석교동 시장이었다. 그 석교동의 이름이 바로 남석교에서 나왔다는 것을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남석교는 지금은 없어진 다리이다. 1930년 전후. 청주 지역의 대홍수와 일제의 무심천 수로 변경사업으로 무심천 물길이 새로 잡히며 매몰되었다. 남석교의 또 하나의 이름은 청남교이다. 청주읍성의 남문을 청남문이라 했고 그 곳에서 남쪽으로 뻗은 다리를 남석교라 했다 는 기록이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에 기록되어 남아있다. 2004년 조사에 따르면 남석교는 가구식 구조인 판교 형식으로 제방 옆에 축대를 쌓고 강바닥에 태석을 먼저 놓은 후 그 위에 돌교각을 세우고 돌교각 사이에 가석을 놓고 그 위에 청판석으로 상단을 마무리 하여 완성했다. 평면은 현재의 도로선과 거의 일치하고 있고, 단면은 청판돌이 북단부 65㎝, 남단부 165㎝로 남단부로 갈수록 점점 깊이 매몰되어 있는 상태다. 남석교는 조선시대 이전 세워진 석교 중 가장 큰 다리였다. 조선시대에 남석교는 청주의 서원 8경에 꼽힐 만큼 대단한 명물이었다. 남석교는 또한 청주의 도시 발달 과정을 가장 잘 알려 주는 역사적 유물이다. 전설에 따르면 남석교는 신라 박혁거세 원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민중의 의식 속에서는 이렇게 청주 이천년 역사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청주 시민들은 정월대보름에 답교놀이를 하면서 남석교와 함께 했던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남석교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남석교의 네 버팀목인 석견상이다. 현재 석견상은 원래 남석교가 있던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흩어져 있다. 그 중 두 기는 우암산 아래 용암사에 있다. 또 한 기의 견상은 충북대학교 잔디밭 옆 숲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그 형태를 알아 보기 매우 힘들 정도로 변해버린 석견상이지만 남석교의 일면이나마 살펴 볼 수 있는 귀한 유물이다. 청주에서 다리의 존재는 외부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의미한다. 청주읍성에서 외지로 나가기 위해서는 무심천을 건너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리들이 놓여져야 했다. 남석교는 오랜 기간 동안 청주와 외부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 을 해 온 것이다. 많은 청주인들은 남석교를 잊지 못하고 있다. 사라진 지금에도 남석교는 무심천을 상징하는 다리로서 청주인들의 마음 속에 늘 존재하고 있다. 언젠간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남석교, 그 날이 조금이라도 빨리 오기를 많은 이들은 기대하고 있다.
소재지 충청북도 청주시 육거리시장내지도보기
제작일자 2005.7.31
제작자개인 류준호
제작자기관 호서대학교
등록자 류준호
등록일자 200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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