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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사 설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1829
한자 威鳳寺說話
영어의미역 Tale of Wibongsa Templ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송학리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은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찰 창건담 및 폐찰담
주요 등장인물 어린 도목수|스님
관련지명 유학산 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위봉사의 창건과 폐찰에 관련된 이야기.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송학리에 전해 오는 위봉사 창건과 폐찰에 관련된 이야기.

[개설]

칠곡군 가산면 송학리 봉림지에는 약 1천 년 전 신라 말기에 창건한 ‘위봉사’의 절 터가 있다. 위봉사라는 절의 창건과 관련된 이야기와 절이 폐사하게 된 이유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채록/수집상황]

칠곡군 가산면 송학리에 전해 오는 이야기로, 칠곡군지편찬위원회가 채록하여 1994년에 발행된 『칠곡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위봉사를 지은 도목수(都木手)는 12세의 어린 소년이었는데, 모든 재목을 목침과 같은 나무토막으로 연결해 지었다고 한다. 어린 도목수는 계속 나무토막만 다듬어 수만 개를 챙겨 놓고, “내일은 상량(上樑)을 한다”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같이 일하던 목수가 어린 도목수를 시험해 보려고 그 많은 목침 중에서 한 개를 일부러 감추어 놓았다. 이튿날, 어린 도목수가 현장을 살펴보고 나서는, “아! 나무토막 하나를 빠뜨렸구나. 나의 계산 능력이 이렇게 모자라면서 어떻게 감히 절을 지으려 하다니…”하고 연장을 챙겨 떠나려고 하였다. 이런 모습을 본 목수들은 어린 도목수의 능력에 탄복을 하며 나무토막을 숨겨놓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떠나려던 어린 도목수를 만류해 절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위봉사에는 ‘장군수(將軍水)’라고 불리는 샘물이 있었다. 샘물의 물을 장복(長服)하면 기운이 왕성하고 장수(長壽)한다고 하였다. 한말(韓末)에 스님이 장복한 나머지 기력(氣力)이 너무 왕성해 밤에는 축지법으로 원근을 배회하면서 인근 마을의 여인들을 농락하자, 나라에서 스님을 체포하여 사형시키고, 그 후 신도들이 불계(佛契)를 조직하여 빈 절을 유지해 오다가 못이 만들어지면서 폐사되었다.

한편 위봉사는 원래 유학산(遊鶴山) 중턱 암벽(岩壁) 밑에 있었는데, 절 뒤편에 암공(岩孔)이라는 구멍 난 바위가 있었다. 그런데 바위의 구멍에서는 매일 공양(供養)에 필요한 만큼의 쌀이 나와서, 절이 부족함 없이 지내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욕심이 생겨 암공의 구멍을 넓히려고 막대기로 쑤셨더니, 쌀 대신에 빈대[南京虫]가 쏟아져 나와 절이 폐찰되었다고 한다. 절 터는 지금도 남아 있는데, 지금도 돌 더미 사이에 흰 찌꺼기들이 보이는 것이 그때 쏟아져 나온 빈대의 껍질이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위봉사의 창건과 관련된 것과 위봉사가 폐찰된 사연에 관한 전설이다. 어린 도목수의 영험으로 세워진 절이 음탕한 스님과 욕심 많은 스님에 의해 폐찰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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