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이씨가 경상북도 칠곡 지역에서 집성촌을 형성하게 된 것은 광주이씨 선조 둔촌(遁村) 이집(李集)의 증손되는 좌통례(佐通禮) 이극견(李克堅)이 약 500여 년 전 성주목사가 되어 내려올 때 둘째 아들인 승사랑(承仕郞) 이지(李摯)를 책방도령으로 데리고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지는 그 후 팔거현(八筥縣)[칠곡의 옛 이름]에서 가법을 지키는 최하(崔河)의 딸과 결...
광주이씨를 영남의 대표적인 남인 문벌로 만든 이는 이지의 현손(손자의 손자) 대에 태어난 성리학자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1569~1634]이다. 석담 선생은 아버지의 임지였던 칠곡에 정착한 이래 광주이씨를 양반가로 일으킨 중흥조이다. 석담은 대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을 찾아 학문과 군자의 도를 닦아 1606년 대과에 급제하여 중앙정부에 진출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