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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067
한자 錦南里
영어음역 Geumnam-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금남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영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면 금남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9년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면 금남리에서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금남리로 개편
법정리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금남리
성격 법정리
면적 5.5㎢
가구수 227가구
인구[남/여] 580명[남 292명/여 288명]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금무산(錦舞山) 남쪽에 위치하여 금남리(錦南里)라고 불렀다. 자연 마을인 남산이[南山] 마을은 마을 논밭이 대부분 마을 북쪽 가실에 사는 이도원(李道元)이라는 한 부자의 소유였으며, 논밭이 금무산 남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래골 마을은 뒷산에 호두과에 속하는 가래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졌고, 밤나무골 마을은 이곳 모래밭에 밤숲이 있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들마을은 들에 형성된 마을이라 해서 들마을로 부르고, 샛덤 마을은 물이 흐르던 자리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해서 이름 붙여졌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칠곡군 노곡면(蘆谷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자연 마을인 추동 마을, 율동 마을, 노호(蘆湖) 마을, 보병(步兵) 마을을 병합하여 칠곡군 왜관면으로 편입하였다. 1949년 왜관면이 왜관읍으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른다. 금남리는 5개 자연 마을이 2개 행정리로 나누어져 있다. 금남 1리에는 남산이 마을, 금남 2리에는 가래골[가라골, 추곡(楸谷), 추동(楸洞)] 마을·들마을[들역, 장터]·밤나무골[더붕골, 율촌(栗村)] 마을·샛덤[새뜸, 신곡(新谷)] 마을 등이 있다.

남산이 마을의 형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마을 뒤쪽의 유물 산포지에 삼국 시대 토기 편 일부가 수습되고 있다. 가래골 마을은 지금부터 약 250년 전 현풍인(玄風人) 곽기홍(郭基弘)이 금릉(金陵)에서 이곳으로 옮겨 와 현재까지 후손들이 살고 있다. 밤나무골 마을은 지금부터 약 200년 전 이규오(李奎五)가 성주에서 옮겨 와 현재까지 그 후손이 살고 있다. 들마을은 광복 후 10여 년 동안 들 가운데 금남 시장이 서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샛덤 마을은 1920년 대홍수로 추동 주민들이 이곳으로 옮겨 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자연 환경]

금남리왜관읍에서 남쪽으로 약 8㎞ 지점에 위치하여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河濱面)과 접한다. 북쪽으로 금무봉이 솟았고, 서쪽으로는 북에서 남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현황]

2013년 12월 현재 금남리 면적은 5.5㎢이며, 인구는 227가구, 580명으로 남자가 292명, 여자가 288명이다. 남쪽으로 흐르는 낙동강 연안에 쌓인 충적토에서 채소와 과수를 중심으로 농사를 지었으나, 지금은 왜관 산업 단지가 조성되어 대부분의 농경지와 마을이 수용되고 군데군데 일부분만 남게 되었다. 마을 야산 중턱에 칠곡 군립 노인 요양원, 시몬 정신 건강 병원천주교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분도 노인 마을[양로원]이 자리하고 있다. 낙동강 변을 따라 왜관읍과 대구광역시를 잇는 4차선 국도가 지나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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