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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095
한자 三淸里
영어음역 Samche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삼청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영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면 삼청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9년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면 삼청리에서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삼청리로 개편
법정리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삼청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5.2㎢
가구수 473가구
인구[남/여] 999명[남 533명/여 466명]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삼청리는 4개 자연 마을이 3개 행정리로 나누어져 있다. 삼청 1리에 오솔[월매(越梅), 오수월(梧樹越), 오곡리(梧谷里)] 마을, 삼청 2리에 장다리[장달리(長達里), 장교(長橋)] 마을·홈골[명곡(椧谷), 사라리(沙羅里)] 마을, 삼청 3리에 못고개[모곡리] 마을이 있다.

오솔 마을은 매원리 남쪽으로 흐르는 매원천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라 월매라고도 했고 뒷산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솔, 오수월, 오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장다리 마을은 매원천 남쪽 지역에 있는 마을에서 긴 다리를 건너 매원장을 보러 왔기에 장다리라 부르게 되었다. 홈골 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오목하여 홈골이라 부르게 되었고, 예전에 사라지(沙羅池)라는 큰 못이 있었는데 바로 못 뒤에 있는 마을이라 사라리라고도 불렀다. 못고개 마을은 사라지 동쪽 위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칠곡군 파미면(巴彌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월매·사라(沙羅)·장교·중매·상매·월오(月嵨) 등의 각 일부, 도촌면(道村面)의 완정(浣亭) 일부와 노곡면의 대곡(大谷) 등 일부를 병합하여 삼청동이라 하고 칠곡군 왜관면에 편입하였다. 1949년 왜관면이 왜관읍으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솔 마을은 조선 후기 매원에서 광주 이씨(光州李氏)가 옮겨 와서 형성되었고, 거의 같은 시기에 봉화 금씨(奉化琴氏)·안동 권씨(安東權氏)·야성 송씨(冶城宋氏)가 옮겨 와 함께 살았다. 현재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봉화 금씨 사당인 오수재(梧叟齋)가 있다.

장다리 마을의 형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미군 기지와 골프장이 인접하고 있어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홈골 마을 형성 연대 역시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에 광주 이씨 이이진(李以璡)이 대곡에서 옮겨 와 정착하면서 그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살고 있다. 그 후 김해 김씨(金海金氏)·한양 조씨(漢陽趙氏)·단양 우씨(丹陽禹氏) 등 여러 성씨가 5~6가구씩 모여 살고 있다. 못고개 마을은 1960년대 양돈과 양계를 중심으로 축산 단지가 조성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형성되었다.

[자연 환경]

삼청리왜관읍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3㎞에 위치한다. 매원천이 서남으로 흐르면서 비옥한 삼청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남북으로 이어진 경부 고속 도로 왜관 나들목이 삼청리에 자리하며 국도와 지방도 등도 지나고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한 마을이다.

[현황]

2013년 12월 현재 삼청리의 면적은 5.2㎢이며, 인구는 473가구, 999명으로 남자가 533명, 여자가 466명이다. 남쪽으로 인접한 왜관읍 금산리왜관 산업 1단지가 조성되어 주민들이 삼청리로 많이 이주하였다. 인접 마을인 왜관읍 봉계리에 골프장 두 곳, 석전리에 미군 기지 등으로 인해 요식업, 주유소 등 상업 시설이 늘고 있어 마을이 새롭게 변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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