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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216
한자 靑銅器時代
영어의미역 Bronze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박보현

[정의]

경상북도 칠곡 지역에서 청동으로 날이 달린 도구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시기.

[개설]

신석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사이에 위치하는 고고학적 시대구분 이름으로 학자에 따라 여러 가지 설을 내놓고 있지만 여기서는 대체로 기원전 1000년 전후부터 기원전후에 속하는 시기로 한정하는 용어로 사용하고자 한다. 곧 신석기시대에는 날 달린 도구를 만들 때, 돌을 사용하여 만든 것에 비하여, 이 시기에는 이와 더불어 청동(靑銅)으로 만든 이기(利器)를 특징적으로 사용하는 단계를 일컫는다.

[특징적 유구와 유물]

청동기시대의 보편적 도구로는 요녕식동검(遼寧式銅劍), 마제석검(磨製石劍), 마제석촉(磨製石鏃), 한국식동검(韓國式銅劍)을 주로 사용하는 특징을 가지며, 그릇으로서는 민무늬토기(無紋土器)를 주로 사용하면서 붉은 간토기, 검은 간토기 등이 있으며, 무덤으로는 고인돌(支石墓), 돌널무덤(石棺墓), 나무널무덤(木棺墓)을 주로 만들었으며, 집터는 장방형, 원형, 방형을 띠고 있다.

[생업]

청동기시대에는 자연제방 등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서 밭이나 논으로 경작한 흔적들이 남강 유역에서 본격적으로 발견되기도 하고, 방어를 위하여 마을 주위에 긴 구덩이나 나무 기둥을 돌려서 감싸는 마을(環濠聚落)이나 산 정상의 높은 구릉에 자리하는 마을(高地性聚落)도 생겨나고 있어서 매우 특징적 현상을 보인다.

[신앙]

여러꼭지거울(多鈕鏡)이나 청동방울, 나팔꼴동기 등과 같이 용도를 알 수 없지만 대체로 의식(儀式)에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유물들이 한국식 동검과 함께 무덤에 부장되고 있어서 한반도만의 독특한 청동문화를 이루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칠곡 지역에서 청동을 알거나 사용한 시점이 언제부터였는지를 유추하기에는 여전히 자료의 공백이 심하다.

[칠곡지역의 청동기시대]

칠곡 지역에서는 지금까지 청동기시대에 해당되는 북삼읍 율리 유물산포지 1곳을 비롯하여 약목면 복성리를 비롯한 동명 금암리, 기성리 봉암리 고인돌, 약목 남계리, 복성리, 석적 남율리, 왜관 석전리, 지천 신리, 황학리 등 10여 곳에 고인돌 또는 고인돌군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서 청동기시대부터 인간이 삶을 영위하면서 지역마다 무덤을 남겼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칠곡 지역에서 삶을 살았던 시기는 이들 유적 가운데에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복성리 고인돌군에서 일부 알 수 있다.

복성리 고인돌군은 조사 당시에는 지표에 2~3기의 상석이 알려져 있었으나, 발굴결과 상석은 일부 이동이 되었지만 주변에서 돌널(石棺)을 비롯한 22기의 유구를 조사하였고, 매장 유구로 인정되는 것은 17기였다. 여기서 출토된 유물인 마제석검, 마제석촉, 대롱옥[管玉], 홍도 등은 청동기시대의 중간 단계에 해당되는 자료이며 지표조 사에서 수습된 일부 자료는 청동기시대의 초기에 유행하였던 이단병식(二段柄式) 마제석검도 있어서 칠곡 지역에서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청동기 초기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가능성은 매우 높게 되었다. 청동을 주로 사용하는 순수한 청동기 사용의 흔적은 현재까지 확인할 수 없으나 유적 조사 사례가 많아지면 발견될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8.06 [특징적 유구와 유물] 수정 <변경 전>민무늬토기(無文土器) <변경 후>민무늬토기(無紋土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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