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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478
한자 金東俊
영어음역 Gim Dongjun
이칭/별칭 백겸(伯兼),적암(適菴)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헌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고정(考亭)]
성별
생년 1685년연표보기
몰년 1732년연표보기
본관 광산
대표관직 정랑(正郞)

[정의]

조선 중·후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백겸(伯兼), 호는 적암(適菴). 신라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는 광산김씨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의(參議)에 증직된 김승국(金升國)이다.

[활동사항]

1685년(숙종 11)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고정]에서 태어나 1711년(숙종 37)에 사마시에 합격 1721년(경종 1)에 증광시 갑과에 급제하여 정랑, 고성 현령, 장령(掌令) 등을 역임했다. 1728년(영조 4)에 역변(逆變)을 당하여 상복을 입었으면서도 방략(方略)을 아뢰어 영조가 크게 받아들여 표창하고 특별한 교지를 내려 말하기를 “위난(危難)에 달려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신하의 도리이고, 상복(喪服)을 벗고 갑옷 입고 투구를 쓰는 것은 경전과 예기에도 가르침이 있다. 너는 일을 처리하는 재주를 지녔고 또 고을의 중망(重望)이 많으니 권도(權道)로 기용하여 군사를 모집하는 임무를 맡기노니, 너는 그 대의(大義)를 생각하여 사사로운 정을 억누르고 마음을 다하여 계획하여 때의 어려움을 같이 구제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이후 훈(勳) 1등으로 기록되었으며, 벼슬은 정랑(正郞)까지 이르렀다. 고성(固城)에 임(臨)해서는 큰 흉년을 만났는데 마음을 다하여 진휼하였다. 1732년(영조 8) 임소(任所)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판 윤필병(尹弼秉)이 지은 행장(行狀)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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