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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658
한자 忠節
영어의미역 Faithfulness
이칭/별칭 충신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영복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국가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또는 행위.

[개설]

충신이란 충성스러운 신하를 말한다. 임금이 올바른 정치를 못할 때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하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나라 일에만 매달린다. 특히 나라가 망할 때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여 자결하거나 은둔하는 등 망한 나라에 대한 충성을 다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백이와 숙제, 정몽주 등이 있다. 충성심을 발휘하여 후세에 칭송을 받고 있는 충신들의 마음은 항상 나라와 임금, 그리고 겨레를 위하는 일념에 차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개인의 영달이나 한 집단의 권력 쟁취를 위하여 공을 세운 일반 공신과는 구분되고 있다. 특히 충신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많이 배출되었고, 충신들의 희생으로 국가와 국민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충효 사상의 전승]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효자 집안에서 충신 난다는 말처럼 효(孝)와 함께 충(忠)을 중시하였는데, 신라에서는 화랑도에게 “들어가서는 가정에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한다.”는 교육을 시켰고, 백제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을 때 충신 흥수(興首)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자왕에게 간언을 했고 계백(階伯)은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싸우다가 장렬히 최후를 맞았다.

그리고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온달 장군의 죽음 등도 나라를 위한 충성심의 발휘였으며, 고려 말기에 충성을 다하다가 개성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한 정몽주의 절개도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비롯하여 김상헌(金尙憲)과 삼학사(三學士) 등의 충신이 나왔다. 조선 말기에 와서는 일제를 비롯한 외세의 침입에 충신들의 항거는 매우 장렬하였다.

[칠곡의 충신들]

『국역 칠곡지리지』에 약간 명의 충신과 『국역 칠곡지』에 22명의 충신의 기록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려 말 김양검(金良劒), 배균(裵均), 배극렴(裵克廉), 정지(鄭地)와 더불어 사근역(沙斤驛)에서 홍건적을 격파하다가 해를 입었다. 장안세(張安世)는 고려가 망함에 망국의 백성으로 의리를 지켰다. 한방도(韓方道)도흥(都興)은 왜적과 목미도에서 싸우다가 패하여 세상을 떠났다.

병자호란 때에는 이서우(李瑞雨), 심열(沈烈)은 죽산(竹山) 쌍령(雙嶺)에서 순절했고, 이일영(李逸英), 이일로(李逸老)는 강도에서 순절했으며, 윤성거(尹聖擧), 강주영(姜柱永), 장해(張海) 등은 병자호란 때 공을 세웠다.

임진왜란 때에는 유준국(柳俊國), 박세건(朴世健), 박정첩(朴廷倢), 송협(宋浹), 송흡(宋洽), 이광복(李光復), 이수당(李守讜), 이심득(李心得), 배정의(裵貞義), 최대윤(崔大胤), 소논동(蘇論東), 전민련(全敏連), 이심옥(李心玉), 구연우(具連佑), 백수화(白受和) 등이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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