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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695
한자 張柱翊
영어음역 Jang Juik
이칭/별칭 무중(武仲),만암(晩庵)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집필자 장영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율리
성별
생년 1843년연표보기
몰년 1914년연표보기
본관 인동
대표관직 의릉참봉(懿陵參奉)

[정의]

조선 말기 칠곡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무중(武仲), 호는 만암(晩庵).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로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 인의동]과 칠곡군 석적읍[성곡·중리·반계리], 기산면 각산리, 북삼면 율리, 가산면에 집성·세거하고 있다. 유일(遺逸) 장압(張岋)의 후손이다.

[활동사항]

벼슬은 의릉참봉(懿陵參奉)을 지냈다. 효성과 우애, 자선(慈善)으로 명망이 일세에 드러났다. 어버이의 병환에 대변을 맛보았으며, 의장(義莊)을 설치하여 두루 여러 세대의 곤궁함을 도왔다. 밭을 내어 불리어서 많은 마을 사람들을 구휼(救恤)하였다. 죽음에 미쳐 인보단(仁報壇)을 세워 그를 제사 지냈으며 기록하여 잊지 않았다.

[묘소]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연명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사후에 인보단을 세워 제사지냈으며, 회당 장석영(張錫英)이 행장을 짓고 특진관(特進官) 윤기원(尹起元)이 비갈을 지었다. 석촌(石村) 윤용구(尹用求)가 글을 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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