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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학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1516
한자 東昌學院
영어의미역 Dongchang Institute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교육기관
설립연도/일시 1922년 4월 7일연표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교육 기관.

[변천]

1922년 4월 7일 왜관청년회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설립한 학교로, 개원하자마자 원생이 크게 늘어 한 달여 만에 170여 명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 칠곡군 유일의 사학 기관이었으며 채충식 등 청년회 활동가들이 교사로 되어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이수목(李壽穆), 박희중(朴喜重), 이상호(李相祜) 등 3명이 자진하여 각자 1백 원의 유지비를 부담하여 운영자가 되기로 한 후 이수목이 중도 탈락하고 후임으로 이강진(李綱鎭)이 참여하여 세 사람이 1년간 350원의 유지비를 내기로 하였다. 그러나 세 사람이 부담액을 내어 놓지 않아 강사의 월급도 지불하지 못하게 되자 학생 수도 점차 줄어들게 되자 급기야 폐교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경상북도에서 지방비와 향교 재산 수입의 일부를 지원받아 학원 운영비로 사용하였는데, 그 금액은 1년에 약 300원에 달했다. 또 왜관곡물상조합의 보조까지 받아 학원이 운영되었다. 그러나 1929년의 큰 가뭄으로 인해 군청과 향교에서는 지원을 거부하였고, 지방 재산가들은 학원에 관심이 없음으로 인해 학원 운영에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때 지방유지 등이 기금을 모았는데, 그 금액이 2백 47원이었다. 이렇게 하여 학교 운영의 위기를 넘겼으나 일시적인 것이었다. 그에 따라 1932년 6월 20일에는 무기 휴교를 단행하였고, 운영 필요 경비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폐교해야 될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왜관곡물상조합에서 곡물 매매를 하면서 마련한 수수료로 학원 운영 경비를 다시 충당되면서 폐교의 위기는 넘기게 되었으나 학원의 원활한 운영에는 부족하였다. 그로 인해 학원 시설과 학생 수는 점차 줄어들었고, 해마다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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