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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바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1840
영어의미역 Old Woman-Rock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영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조은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유복자|할머니|신령
관련지명 한솔마을|할미바위|팔암골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신령님의 금기를 어겨 큰 바위에 깔려 죽고 만 할머니의 이야기.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영리에 전해오는 풍수와 관련된 이야기.

[개설]

이야기의 전개에서 금기(禁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금기를 어기게 되면서 이야기의 내용이 비극적인 상황으로 변모한다.

[채록/수집상황]

칠곡군지편찬위원회가 채록하여 1994년 발행된 『칠곡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영 2리 한솔마을 냇가에 ‘할미바위’가 서 있다. 임진왜란 당시 전국 곳곳에서는 축성(築城)을 위해 많은 석재를 모으고 있었다. 한솔마을에는 유복자인 외아들과 같이 어렵게 살아가는 할머니가 있었다. 집이 원체 가난하여 외아들은 40세가 넘도록 장가도 들지 못한데다가 우연히 병을 얻어 이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정한수를 떠 놓고 천지신명께 아들의 병이 낫기를 빌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정성에 감응이 있었던지 어느 날 밤 꿈에 신령님이 현몽하여, “뒷산 골짜기에 올라 큰 바위의 밑을 파면 똬리 한 개가 나올 것이니, 그것을 머리에 얹고 여덟 개의 바위를 한 번에 한 개씩이고 축성하는데 갖다 주면 아들의 병이 완쾌될 것이니라.”라고 말하였다.

할머니는 날이 밝자, 뒷산 골짜기에 올라가 꿈에서 말한 바위를 발견하고 그 밑을 팠다. 과연 한 개의 똬리가 나왔다. 똬리를 머리에 얹고 집채 만 한 바위를 머리에 이니 신기하게도 짚단처럼 가벼운 것이었다. 할머니는 축성 작업장을 향하여 가벼운 걸음으로 출발하였다. 얼마를 가다가 ‘팔암(八岩)골’에 이르렀는데, 그 곳에는 한 자리에 여덟 개의 바위가 있었다. 이것을 본 할머니는 여덟 개의 바위를 하나씩 옮기는 것보다는 신기한 똬리로 한꺼번에 옮겨 아들의 병을 빨리 낫게 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그리하여 이고 있던 바위를 땅에 내리는 순간 똬리가 떨어지면서 큰 바위 밑에 할머니는 깔려 죽고 말았다. 조급한 마음에 신령님의 명령을 어긴 할머니는 외아들의 완쾌도 보지 못한 채 그만 바위 밑에 매장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이 바위를 ‘할미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한편 큰 바위가 땅에 박히면서 주위에는 깊은 소(沼)를 만들게 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 소는 메워지고 바위는 땅에 솟은 형상이 되었지만, 어찌나 큰 바위였던지, 어른의 팔매로도 이 바위를 넘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와 함께 묻힌 똬리가 금으로 만든 똬리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바위 밑을 파내려갔는데, 거의 바닥이 들어 날 무렵이면 어김없이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모여들어 소나기가 내리면서 천둥과 함께 바위는 땅속으로 더 깊이 묻히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에도 욕심 많은 사람들이 또 바위 밑을 팠지만 파면 팔수록 땅속으로 더 깊이 묻히게 되어 지금은 사람 키 정도의 바위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할미바위는 나라에 길조(吉兆)가 있을 때는 땅위로 솟아오르고 흉조가 있을 때는 더 깊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과거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때는 가라앉았고, 해방 직전부터는 할미바위가 솟아올랐다고 전하며 현재도 많이 솟아 있는 편이어서 우리나라에 행운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모티프 분석]

이야기의 모티프는 한 번에 한 개의 바위만 이라고 당부하였는데, 아들의 건강한 모습을 빨리 보기위해 할머니가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머리에 이고 있던 바위에 깔려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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