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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을 울린 그녀가 시집오던 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A030103
분야 지리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순하

1946년 한국으로 귀국한 박화자 할머니는 지독한 가난으로 생활고를 겪게 된다. 그러던 중 박화자 할머니에게 중매가 들어왔는데, 신랑이 될 사람은 종갓집 장손으로 나이가 50이 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해 이곳저곳으로 선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박화자 할머니의 마을에 살던 그의 친누나가 중매쟁이를 그녀의 부모님에게 보내서는, 신랑감의 나이는 40이나 집 한 채와 논 네 마지기, 밭 300평을 줄 테니 시집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며 물으셨다고 한다.

할머니의 부모님은 “자식을 어떻게 밥과 바꾸겠냐?”며, 한 번만 더 그런 말을 꺼내면 친구의 인연을 끊겠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그런데 문 바깥에서 엿듣고 있던 할머니는 집 한 채와 논 너마지기, 밭 300평이면 부모님이 평생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물동이를 이고 중매쟁이를 따라갔다. 어떤 말로 중매쟁이를 불러야 할지, 당시 수줍음이 많고 한국말이 서툴렀던 그녀는 중매쟁이를 차마 부르지 못하고 공동우물가에 있던 돌로 세면대를 쳐서 신호를 보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과 마음은 통하는 것인지, 다행히 일본말을 구사할 줄 알았던 중매쟁이는 그녀에게 다가와 “왜 그러냐?”고 물었고, 그녀는 집과 논과 밭을 정말 주냐고 물었다. 그리하여 집과 논과 밭을 준다는 중매쟁이의 말에 그녀는 시집을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매쟁이는 부모님이 허락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매쟁이와도 인연을 끊겠다고 했다면서 단념하라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시집을 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렇게 중매쟁이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는 굽이쳐 내려가는 낙동강 물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뒷동산에서는 젊은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아련히 들리고, 앞으로는 석양에 지는 노을이 펼쳐지는 가운데 할머니는 물동이를 놓은 채 일본에서의 생활을 떠올렸다. 곱게 자란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던 그녀는 명문 고등학교에서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환영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그녀가 무작정 부모님을 모시고 한국으로 와,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이 고생 저 고생을 한 기억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그녀가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다. 그리고 얼마 후 부모님의 이웃이자 친구였던 중매쟁이가 할머니의 집을 다시 찾았다. 할머니의 부모님은 “나는 딸 치우려고 한 적이 없다.”며 구정물을 중매쟁이에게 퍼부었다. 딸을 보내지 않겠다는 부모님의 태도는 단호했지만 중매쟁이와 신랑은 끈질기게 부모님을 설득했다. 보다 못한 그녀는 부모님에게 “제가 시집을 갑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 말을 전해들은 신랑 측 어르신들이 “그래 참 복이 많다.”며 그녀를 기특하게 여겼고, 이에 감동을 한 신랑 역시 “제가 복이 많습니다.”며 허락을 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의 부모님은 완강했다. 결국 3일 뒤 사주가 왔으나 부모님의 태도가 워낙 완강하여 할머니가 직접 받았고, 이웃집에서 부모님을 대신하여 쌀 한 가마니를 메고 온 사돈댁을 대접했다고 한다. 반대를 하던 할머니의 아버지는 혼인날을 열흘 앞두고 다른 지역으로 돈을 모으러 가버리셨고, 어머니는 결국 앓아 누우셨다.

그리하여 시집을 가는 날 치성도 할머니가 직접 들였다. 혼인날을 3일 앞두고 오신 아버지는 혼인날을 말리지 못했다며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셨지만, 할머니는 시집을 가서 살겠다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연지곤지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가마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그제야 신랑감의 나이가 50이라는 사실을 알고 가마를 부수려고 하는 부모님을 말렸다. 부모님이 자식을 어떻게 밥이랑 바꾸냐며 같이 죽자며 목놓아 우시자 할머니는 물론이고 친척들도, 이웃들도 모두 함께 울었다고 한다.

가마를 타고 매원리에 도착한 할머니는 집안 큰 어르신들의 환영을 받으며 가마에서 내렸다. 수많은 구경꾼들은 현대판 심청이가 왔다며, 심신이 멀쩡하고는 이런 혼사를 치를 수 없다며 반신반의로 그녀를 맞았다고 한다. 집안 큰 어르신의 “마치 선녀가 하강하는 듯하다.”는, 곱다는 칭찬을 받으며 가마문을 나선 할머니는,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잘 살아야겠다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고 한다.

[정보제공]

  • •  박화자(여, 1931년생, 매원리 거주, 부녀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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