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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나누는 옛이야기들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C030203
분야 지리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남창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엄윤

시골 마을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정자나무와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쉬는 평상이 아닐까 싶다. 남창마을 입구에도 마을을 지나는 사람들을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커다란 느티나무와 지은 지 5~6년 된 육각정 평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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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청소 후 주민잔치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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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마을노인회 건물

“여름 되면은 정자에 전부 모여 가지고 연세 많은 분들은 경로당(새마을회관), 밑에는 할머니들 경로당(노인회관), 좀 젊은 사람들은 정자에 이래 모여가 놀다가 좀 심심하고 그러면은 찌짐(부침개) 겉은 거도 구워갖고 먹고, 비오면 누 집에 부추 좀 가오고, 누 집에 또 밀가루 가오고, 우리 집엔 또 기름 가오고 굽어갖고 갈라먹고…… (중략) 할아버지들하고 고서도 맥주 내시는 분도 계시고 그래 가지고 어울 리가 갈라 잡수고 그러시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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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의 동네 평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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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에서 식사하는 동네 어른들

사공태 옹과 몇몇 마을 어르신들이 평상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새 화제가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들어와 길을 넓힐 때 산성 바로 아래 길을 닦다가 고장난 불도저를 버리고 간 이야기로 넘어갔다.

“우리가 저게 남창이라 카는데 도로를 닦을 적에, 미국서 불도저를 갖고 왔거든. 불도저로 길을 닦는데, 불도저가 고장이 놨뿌서. 정비를 못 해줘 가 미국말이라 그래가 길 가에 놨둬부고 내버리가 소구루마도 몬댕깄어. 불도저 때문에 동민이 나와 가지고 땅을 파가 서 있는 발턱 밑에 언덕을 만들어 놓고 그걸 밀어가 밑에 밭에 널짜뿠는기라…… (중략) 엿장사가 와가지고 하나씩 두 개씩 풀어가 다 가져갔는기라. 요새 같으면 그게 돈이 얼마라.”

매일 삽과 곡괭이로 길을 만들던 시절 외국에서 들어온 불도저를 보고 놀랐던 사람들의 추억 속에 이 불도저의 기억은 이제 모두가 언제나 나눠도 웃고 또 웃을 에피소드 중 하나가 된 듯하다. “그걸 만약 기술자가 있었으면 부자됐을 낀데 그걸 모르고 언덕을 만들어 널짜뿌스니(떨어뜨렸으니).”

당시 원수덩어리 같았던 불도저 이야기가 나오자 너도 나도 지난날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신다.

“그리고 돌배 따먹다 인민군들이 뒤에서 따발총을 땅땅 쏘는 바람에 배 따먹다 피난 갔부따. 총소리가 나가 전부 성 앞으로 나오는데 전부 한보따리씩 울러 매고 내삐리는 사람은 내삐리고. 직접 사람 보고는 안 쏘고 빨리 나가라고 위협 주는 기라. 그래서 학교 있다가 매일 조금씩 조금씩 하룻밤 자고 하루 더 가고, 하룻밤 자고 하루 더 가고…….”

어느새 이야기가 전쟁을 피해 피난을 갔던 시절로 넘어가 있었다.

남창마을 사람들은 당시 거의 한 달 정도 피난을 갔다가, 돌아올 적에는 소문을 듣고 대체로 8월 14일 저녁에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이야기는 다시 동네에서 최근 치러진 장례 이야기와 더불어 옛날에 불렀던 운상꾼의 앞소리로 이어져 갔다.

청춘은 연연록이요 왕손은 귀골귀라/ 명사십리 해당화야 명년삼월 돌아오면/ 너는 다시 피련마는 우리인생 죽어지면/ 삼오칠백 떨어진다

예전에는 이렇게 시작하는 구슬픈 앞소리와 함께 여덟 명의 운상꾼이 상여를 메고 갔는데, 상여는 천왕님을 모시는 마을 앞은 지나지 못하고, 목적지 없이 가다가 어느 양지 바른 곳에 도착하면 그곳이 누울 자리였다고 한다.

“어제 청춘 오늘 백발 하더니 세월은 참 빠르다…… (중략) 우리는 엄청 못 먹고 그 무거운 짐 지고 저게서(산성) 시작해서 동명까지 나무지고 팔러 댕기니 아침에 보리밥 한술 먹으면 저녁에 죽, 쌀 조금 넣어가 끓여가 먹고 이러니 도리가 없다. 배가 고파도 말할 수 없이 고프다. 학교 다녀도 죽을 사가지고 다닐 수는 없다 아이가.”

가난 자체가 삶이었던 그 시절을 회상하는 어르신들과 날 좋은 날 느티나무 아래 정자 그늘에 앉아 있으니, 가난조차 그리움이 되고 추억이 되어 웃음소리로 대답하는 듯했다.

[정보제공]

  • •  사공태(남, 1933년생, 남창마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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