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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당을 지키는 할머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D020103
분야 지리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3·4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순하

상주가 고향인 풍산류씨 류재두 할머니는 100세가 가까운 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아하고 고운 모습을 간직하고 계셨다. 류재두 할머니가 웃갓마을로 시집을 오게 된 것은, 류재두 할머니의 친오빠와 경북고등학교 동기였던 시아버지가 아들 이용기와 류재두 할머니의 혼인을 성사시켰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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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는 류재두, 이석남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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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는 류재두, 이석남 할머니

그 때 할머니의 나이는 열일곱 살로, 상주국민학교 졸업을 앞두고 얼떨결에 시집을 왔단다. 할머니는 시집을 온 뒤에 공부를 계속했다고 한다.

“우리 친정은 상주읍, 풍산류씨인데 거기서 있다가 우리 시어른이 오셔 가지고 우리 집에 하루 주무시고 계시다가 그만 내 학교 졸업 마칠 때 혼인한다 해가 안 왔나. 아들도 한 명뿐인데. 그래서 학교 또 나가고 집에 일도 해야 하고…… 나는 학교 나가가지고 우리 시어른이 나 공부시키고.”

그렇게 할머니는 시집을 온 뒤 학업과 집안 살림을 병행해야 했다. 그러나 집안일을 돌봐주는 사람이 있어 남들처럼 큰 고생은 하지 않았다고 하신다. 그러나 할머니는 당시 집안 어른들의 옷만큼은 손수 만드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시집을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집안 손님을 대접하는 일이었단다. 그때는 나이도 어리고 학교도 다니던 시절이라 더욱 제사 등의 집안 행사 때 찾아오는 많은 손님들을 대접하는 일이 힘들었다고. 예부터 집안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지극정성으로 식사대접을 하는 것이 가풍이었기에, 시어른이 돌아가신 후에도 할머니는 집안을 찾는 손님 접대에 소홀함이 없게 하려고 노력하셨다고 한다.

할머니의 시아버지는 며느리에 이어 손자들까지도 공부를 가르치셨다고 한다. 시아버지의 학업에 대한 열의로 모두들 공부를 곧잘 했다며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그러고는 지금은 나이가 너무 많아 아무 대접도 못해 준다며, 할머니는 ‘미안해서 어쩌냐’ 하시며 집 대문까지 배웅해 주셨다. 그렇게 아직은 할머니가 계셔서 경수당이 온전하게 지켜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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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당의 현재 주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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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을 타일로 보수한 안중사랑채 모습

[정보제공]

  • •  류재두(여, 1910년생, 웃갓마을 거주)
  • •  이석남(여, 1930년생, 웃갓마을 거주)
  • •  이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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