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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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堅金 |
영어음역 | Gyeon Geu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이병희 |
[정의]
신라말·고려초에 활동한 청주의 호족.
[활동사항]
청주 출신의 호족으로 청주의 영군장군(領軍將軍)이 되었다. 918년(태조 1) 7월 부장(副將) 연익(連翌)·흥현(興鉉)과 함께 개경에 가서 태조(太祖)를 예방하자 태조는 이들에게 각각 말과 비단을 차등있게 주었다. 이때 견금(堅金)은 개경에 있는 청주 출신 김근겸(金勤謙), 관준(寬駿), 김언규(金言規) 등을 제거할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하고 도리어 김근겸에 등에 의해 다른 마음이 있는 자라는 반격을 받았다.
그러나 왕건(王建)은 견금 등을 우대하면서 돌아가 민심을 안정시키도록 하였다. 이러한 왕건의 처사에 감복하여 결국 청주에서 반란을 일으키면 제어하기가 어려우니 관군을 파견할 것을 청하였으며, 왕건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였다.
왕건은 견금의 건의에 따라 마군장군(馬軍將軍) 홍유(洪儒)·유검필(庾黔弼) 등을 보내어 군사 1,500명으로 진주(鎭州)[현 충청북도 진천군]에 주둔하게 하였으며, 얼마 안되어 도안군(道安郡)[현 충청북도 괴산군]에 마군장군(馬軍將軍) 능식(能植)을 보내어 진무케 하자 청주세력이 쉽게 반역하지 못하였다. 뒤에 진선(陳瑄)과 그 아우 선장(宣長) 등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쉽게 진압할 수 있었다.
[의의와 평가]
고려초 청주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진선 등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