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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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바위, 돌, 금속 등에 새겨져 있는 그림이나 문자. 금석문은 바위, 돌, 금속 등에 새겨져 있는 문자, 그림 등을 총칭하여 가리키는 용어이다. 칠곡군의 금석문은 비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바위 면에 문자를 새긴 암각류가 있다. 비석에는 신도비, 효열비, 기념비, 전적·전승비, 유적·유허비, 사적비, 송덕비, 불망비, 제단비, 묘비 등이 있다. 암각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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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포남리에 있는 재실. 본관이 한양(漢陽)인 매설헌(梅雪軒) 조완규(趙完珪)는 조선시대 진사를 지냈으며 안평대군(安平大君), 성삼문, 박팽년 등과 친분이 두터웠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란(癸酉靖難) 때 잡혀 희양(淮陽)에 갇혔다가 이듬해 처형당했다. 부인 이씨는 세조가 신숙주의 노비가 되길 명하자 딸과 함께 우물에 빠져 죽었다. 1791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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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노산(老山). 덕원부(德原府) 용진현(龍津縣)에서 세거한 사족의 후손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며 조선이 개국하자 한성으로 옮겨 가세가 크게 번창하자 한양을 본관으로 삼은 한양조씨로 지평(持平) 조완규(趙完珪)의 차자(次子)이다.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금산리[야디기]에 입향한 한양조씨의 칠곡 입향조이다. 어머니는 양천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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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칠곡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한양조씨(漢陽趙氏). 초명은 조양래(趙陽來), 개명(改名)은 조서규(趙瑞圭), 자는 복초(復初), 호는 양졸재(養拙齋)이다. 덕원부(德原府) 용진현(龍津縣)에서 세거한 사족의 후손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한성으로 옮겨 가세가 크게 번창하자 한양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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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충신.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매설헌(梅雪軒). 시조 조지수(趙之壽)의 6세손으로 충무공 조영무(趙英茂)의 손자이며 남원부절제사(南原府節制使) 조전(趙琠)의 장자이다. 경기도 광주 퇴촌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나고 충절심이 강했다.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진사로서 안평대군, 성삼문, 박팽년과 교우하며 왕실의 심상치 않음을 염려하던 중 김종서(金宗瑞)가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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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사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성씨. 주(周)의 목왕(穆王)이 서언왕(徐偃王)을 정벌할 때 조부(造父)가 공을 세워 조성(趙城)에 봉해졌으므로 나라 이름을 따서 조씨(趙氏)라 성(姓)하여 조씨의 연원(淵源)을 이루었다. 한양조씨의 시조(始祖) 조지수(趙之壽)의 동래연대(東來年代)는 상고(詳考)할 수 없다. 조지수는 고려 때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