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402
한자 金石文
영어의미역 Epigraph (Metal and Stone Inscription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최인표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바위, 돌, 금속 등에 새겨져 있는 그림이나 문자.

[개설]

금석문은 바위, 돌, 금속 등에 새겨져 있는 문자, 그림 등을 총칭하여 가리키는 용어이다. 칠곡군의 금석문은 비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바위 면에 문자를 새긴 암각류가 있다. 비석에는 신도비, 효열비, 기념비, 전적·전승비, 유적·유허비, 사적비, 송덕비, 불망비, 제단비, 묘비 등이 있다. 암각류로는 바위 면에 큰 글씨를 음각한 것이 있다.

[비석]

선봉사 대각국사비(僊鳳寺 大覺國師碑)경상북도 칠곡군 북삼면 숭오리 선봉사지에 있는 것으로 고려시대 해동 천태종을 개창한 대각국사 의천의 행적을 새긴 비석들 중의 하나로 1132년(인종 10)에 건립되었다. 비문은 임존(任存)이 짓고, 승려 덕린(德麟)이 전액과 비문을 썼다.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251호 지정되었다.

기성대사비(箕城大師碑)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송림사 동쪽 300m 지점에 있다. 고려시대 몽고 침입으로 소실된 송림사를 중창한 1682년(숙종 12) 승려인 기성대사의 행적을 기릭 위하여 건립한 비석이다. 비문은 이미(李獼)가 지었고, 비문은 윤동섬(尹東暹)이 쓰고, 조종현(趙宗鉉)이 전액(篆額)하였다. 그리고 비석의 건립에 고위 관료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어 조선 후기의 불교와 유학자들의 관계와 관련하여 주목된다.

가선대부 평산신공 묘도비(嘉善大夫 平山申公 墓道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신유장군 유적지 안에 있는데, 조선 인조 때 나선정벌군을 이끌었던 신유 장군의 행적을 적은 비석이다. 원래의 비석은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비편만 남아있고, 현재의 비석은 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원래 비석의 비문은 판서 이현일이 짓고, 교리 이동적이 전액하고 이재익이 음기를 썼으나 고쳐 세운 비석의 글씨는 이상건이 썼다. 1982년 8월 4일에 경상북도 지방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었다.

1. 신도비

석담 이윤우 신도비(石潭 李潤雨 神道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3리[송정리]에 있는데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의 신도비이다. 비문은 원래 묘지명으로 김세렴(金世濂)이 지은 것이나, 1984년 후손인 이영환이 글씨를 써서 건립하였다.

귀암 이원정 신도비(歸巖 李元禎 神道碑)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 있는데 조선 후기 숙종대의 문신인 귀암(歸巖) 이원정(李元禎)의 신도비이다. 채제공(蔡濟恭)이 비문을 짓고, 1689년 4월에 건립하였다.

박곡 이원록 신도비(朴谷 李元祿 神道碑)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 있는데 조선 현종 때의 문신인 박곡(朴谷) 이원록(李元祿)의 신도비이다. 비문은 이가원이 짓고, 후손인 이채진이 써서 1990년 5월 13일에 건립하였다.

죽선 이사맹 신도비(竹仙 李師孟 神道碑)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봉암리[태봉산]에 있으며, 조선 태종 때의 문신인 죽선(竹仙) 이사맹 (李師孟)의 신도비이다. 권중환이 비문을 지어 건립하였다.

동천 박구 신도비(東川 朴矩 神道碑)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평복리[가림]에 있는데 조선 초기의 무신인 동천(東川) 박구(朴矩)의 신도비이다. 장재영이 비문을 짓고, 최종록이 글씨를 썼다.

곤산부원군 류익정 신도비(崑山府院君 柳益貞 神道碑)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망정리에 있는데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인 곤산부원군(崑山府院君) 류익정(柳益貞)의 신도비이다. 권상규가 비문을 지었다.

유헌 장석룡 신도비(遊軒 張錫龍 神道碑)경상북도 칠곡군 북삼면 오평리에 있는데 조선 고종 때의 문신인 유헌(遊軒) 장석룡(張錫龍)의 신도비이다. 김학진이 비문을 짓고, 윤용구가 비문을 썼으며 강우형이 전액하여 1994년에 건립하였다.

2. 효열비

쌍렬비(雙烈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심천리에 있는데 이심옥 처 현풍곽씨와 딸인 광주이씨의 열행을 기리는 열녀비로 이도장이 비문을 지어 1642년에 건립하였다.

박정호 처 김씨 효부비(朴定浩 妻 金氏 孝婦碑)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황학리에 있는데 효부 김해김씨의 효행을 기리는 효부비이다. 민경호가 비문을 짓고, 이정기가 글씨를 썼으며 1992년 5월에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평산신씨 표열비(平山申氏 表烈碑)는 경상북도 기산면 각산리에 있는데 장병덕 처 평산신씨의 열행을 기리는 표열비이다. 서찬규가 비문을 짓고, 장재영이 글씨를 썼다. 비석은 1889 정려각을 건립하고, 1890년에 비석을 세웠으나, 정려각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척기대비(陟屺坮碑)는 경상북도 동명면 학명리[갈골마을 입구]에 있는데 김인흠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여 약 70년 전에 세웠다.

효열부 경주김씨 유적비(孝烈婦 慶州金氏 遺蹟碑)는 경상북도 동명면 남원리 입구에 있는데 권태근 처 경주김씨의 효열을 기리는 유적비이다. 권순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으며 1978년 4월에 건립하였다.

김효부 인동장씨 여표비(金孝婦 仁洞張氏 閭表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송산 3리에 있는데 김주승의 처 인동장씨의 효행을 기리는 여표비이다. 정화가 비문을 짓고, 이통원이 글씨를 썼다.

3. 기념비

대한국사 강원형 기념비(大韓國士 姜遠馨 紀念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 1리에 있는데 항일운동에 앞장 선 강원형을 기리는 비석으로 유석우가 비문을 지어 1965년 10월 3일에 건립하였다.

순국의사 장진홍 기념비(殉國義士 張鎭弘 紀念碑)경상북도 왜관읍 석전리[왜관공원 내]에 있는데 항일운동에 투신한 장진홍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신익희가 비문을 짓고, 박병철이 글씨를 써서 1953년 7월 31일에 건립하였다.

독립유공자 이두석 추모비(獨立有功者 李斗錫 追慕碑)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왜관공원 내]에 있는데 독립운동가 이두석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장영철이 비문을 짓고, 1977년 2월 3일에 건립하였다.

만송 유선생 순국기념비(晩松 劉先生 殉國紀念碑)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에 있는데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사한 유병헌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김정설이 비문을 지어 1963년 8월에 건립하였다.

의사 신상태선생 기념비(義士 申相泰先生 紀念碑)경상북도 약목면 복성리에 있는데 항일 독립운동가 신상태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유석우가 비문을 짓고, 최병찬이 써서 1971년 3월에 건립하였다.

애국지사 도병철선생 순국기념비(愛國志士 都炳喆先生 殉國紀念碑)경상북도 왜관읍 석전리[왜관공원 내]에 있는데 애국지사 도병철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신동철이 비문을 짓고, 장병훈이 써서 1983년 5월 25일에 건립하였다.

일몽 이수택선생 순국기념비(一夢 李壽澤先生 殉國紀念碑)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관호리에 있는데 독립운동가 이수택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으로 1966년 6월 6일에 건립하였다.

이상의 기념비 외에도 국조전이건기념비(國祖殿移建紀念碑), 왜관학생사건기념비(倭館學生事件紀念碑), 대구천주교요람지기념비(大邱天主敎搖籃地紀念碑) 등이 있다.

4. 전적·전승비

칠곡군 지역의 전적·전승비로는 6·25전쟁 때의 격전지로서의 특성 때문에 대부분의 비석이 6·25전쟁과 관련된 것들이다. 대표적인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다부동 전승비[1981년 11월 건립], 왜관지구 전적비[1978년 7월 1일 건립], 국군용사충혼비[1995년 6월 24일 건립], 왜관지구 유엔전승비[1959년 3월 31일 건립], 미군 제27연대 전승비[1971년 12월 15일 건립], 순국경찰위령비[1988년 건립], 충혼비[1955년 10월 3일 건립], 백선엽장군호국구민비[1951년 4월 1일 건립], 백선엽장군 전적비[1973년 9월 18일 건립] 등이 있다.

5. 유적·유허비

의병 옥산장공 유허비(義兵 玉山張公 遺墟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에 있는데 이인좌의 난을 진압할 때 의병을 일으켜 참여한 장대열의 행적을 기리는 비이다. 비문은 이동균이 짓고, 글씨는 손병훈이 썼으며 을해년 8월에 건립하였다.

사미헌 장선생 유적비(四未軒 張先生 遺蹟碑)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에 있는데 조선 말기의 문신인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유적비이다. 비문은 이채진이 짓고, 이연두가 글씨를 썼다.

농산 장선생 유적비(農山張先生遺蹟碑)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에 있는데 조선 말기 농산(農山) 장승택(張升澤)의 유적비이다. 비문은 이채진이 짓고 후손 이재영이 글씨를 썼다.

완정 이선생 유허비(浣亭 李先生 遺墟碑)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 있는데 조선 중기의 문신인 완정(浣亭) 이언영(李彦英)의 유허비이다.

대한의사 운암권공 유적비(大韓義士 雲巖權公 遺蹟碑)는 경상북도 기산면 평복리에 있는데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한 운암(雲巖) 권녕달(權寧達)의 유적비이다. 권영택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써서 1972년 정월에 건립하였다.

문희공 선암 유선생 영정각 유지비(文僖公 仙菴 劉先生 影幀閣 遺址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면 숭오 3리 어필각 내에 있는데 조선 개국공신 선암(仙菴) 유창(劉敞)의 영정각 옛터에 새운 비이다. 비문은 이가원이 짓고, 이채진이 써서 1991년에 건립하였다.

진정 신선생 유허비(眞靜 申先生 遺墟碑)경상북도 칠곡군 북삼면 숭오3리 강진마을에 있는데 조선 중기 진정(眞靜) 우덕(祐德)의 유허비이다. 이기윤이 비문을 지어 1981년 10월에 건립하였다.

순국의사 설강 수원백공 유적비(殉國義士 雪岡 水原白公 遺蹟碑)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관호리에 있는데 임진왜란 때 왜병에게 죽음을 당한 설강(雪岡) 백수화(白受和)의 유적비이다. 비문은 조규설이 짓고, 백운흠이 써서 1974년 5월에 건립하였다.

지하수의사 공적비(池夏洙義士 功績碑)경상북도 기산면 평복리에 있는데 항일 독립운동가 지하수의 유적비이다. 심영덕이 비문을 지어 1998년 5월에 건립하였다.

6. 사적비

회당 장선생 사적비(晦堂 張先生 事蹟碑)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에 있는데 조선 말기의 학자인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의 사적비이다. 유용우가 비문을 짓고, 이원송이 글씨를 써서 1999년 3월에 건립하였다.

화강 장선생 사적비(華岡 張先生 事蹟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에 있는데 조선 말기의 학자인 화강(華岡) 장화로(張華老)의 사적비이다. 김병호가 비문을 짓고, 유시복이 글씨를 써서 1988년에 건립하였다.

7. 송덕비

한씨 연사대 송덕비(韓氏 聯四代 頌德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금암리에 있는데 대구의 부호였던 한은주(韓殷周) 등 4대에 걸친 선덕(善德)을 기리기 위하여 1971년 동명노인회에서 건립하였다. 원래 동명면 봉암동에 있던 것을 광복 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군수 최현달 애민선정비(郡守 崔鉉達 愛民善政碑)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학명리의 도로변에 있다. 비각 안에 송덕비 2기와 선정비 1기와 함께 있으며, 서북면에서 건립하였다.

록젠휄드미육군대령송덕비는 경상북도 칠곡군 남원리[남창마을]에 있다. 1954년 7월 26일의 폭우로 산사태가 나면서 마을이 유실되자 미군의 도움을 받아 남원 2리로 이주하였다. 한국민사원조단의 도움으로 재건된 마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55년 1월 29일에 마을 사람들이 건립하였다.

8. 불망·선정·유애비

관찰사 이담명 영사비(觀察使 李聃命 永思碑)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왜관공원 내에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인 정재(靜齋) 이담명(李聃命)의 선정을 기리는 영사비이다. 배정철이 비문을 지었다.

관찰사 이세재 영세불망비(觀察使 李世載 永世不忘碑)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산성 혜원정사 뒤에 있다. 조선 후기 문신으로 가산산성의 외성을 축조한 이세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1708년 10월에 건립하고, 1785년 이전에 비각을 건립하였다.

관찰사 조강하 영세불망비(觀察使 趙康夏 永世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봉암리에 있다. 조선 말기 문신인 조강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1889년에 건립하였다.

관찰사겸 남영외사 이호준 영세불망비(觀察使兼 營外使 李鎬俊 永世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봉암리에 있다. 조선 말기 문신인 이호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하북면에서 1888년에 건립하였다.

관찰사겸 순찰사 정익하 영세불망비(觀察使兼 巡察使 鄭益河 永世不忘碑)는 경상북도 동명면 구덕리에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인 정익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1741년 6월에 건립하였다.

관찰사 이경재 영세불망비(觀察使 李景在 永世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가산산성 내 남포루 앞에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인 이경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관찰사 김노응 영세불망비(觀察使 金魯應 永世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산성 혜원정사 뒤에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인 김노응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남북창과 천주사가 건립하였다.

관찰사 남일우 유혜비(觀察使 南一佑 遺惠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산성 혜원정사 뒤에 있다. 조선 말기 문신인 남일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겸순찰사 김연 몰세난망비(兼巡察使 金演 歿世難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산성 혜원정사 뒤에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인 김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남북창민과 천주사 등이 병술년 5월에 건립하였다.

도사 이선형 영세불망비(都事 李善炯 永世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칠곡군청 내에 있다. 이선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부사 강선 영세불망비(府使 姜銑 永世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사무소 내에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인 부사 강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1687년 1월 복성동에 건립하였으나, 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기산면 죽전리에도 1기가 있다.

부사 김두남 영세불망비(府使 金斗南 永世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칠곡군청 안에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인 김두남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부사 정필동 영세불망비(府使 鄭必東 永世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칠곡군청 안에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인 정필동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을유년 6월에 복성동과 죽전동에 각각 1기씩 건립하였다.

부사 우성규 영세불망비(府使 禹成圭 永世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칠곡군청 안에 있다. 조선 말기 문신 우성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부사 오진영 영세불망비(府使 吳晋泳 永世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사무소 내에 있다. 조선 말기 문신인 오진영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1852년 3월 복성동에 건립한 것을 현 위치로 옮겨 세웠다.

부사 안근 휼군선정비(府使 安根 恤軍善政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칠곡군청 안에 있다. 조선 후기 문신 안근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부사 이의 선정비(府使 李宜 善政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사무소 내에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인 이의의 공덕을 기릭 위하여 약목현민들이 1748년 복성동에 건립하였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겨 세웠다.

부사 이진회 선정비(府使 李晋會 善政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사무소 내에 있다. 조선 말기 문신인 이진회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1814년에 건립하였다.

부사 이익해 선정애민비(府使 李翼海 善政愛民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사무소 내에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인 이익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1817년 4월에 건립하였다.

별장 서□도 불망비(別將 徐□道 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가산산성 외성 안 혜원정사 뒤쪽에 있다. 별장 서□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별장 서규현 불망비(別將 徐奎賢 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가산산성 동문에서 서쪽으로 300m 지점에 있다. 별장 서규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별장 김재오 불망비(別將 金在五 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가산산성 동문에서 서쪽으로 300m 지점에 있다. 별장 김재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전별장 최백종 불망비(前別將崔百宗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가산산성 동문에서 서쪽으로 300m 지점에 있다. 전별장 최백종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가산진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건립하였다.

영기관 김성림 불망비(營紀官 金聖林 不忘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가산산성 외성 안 혜원정사 뒤쪽에 있다. 1708년 10월에 영기관 김성림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9. 단도비

매설헌단도비(梅雪軒壇道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포남 1리 매설당 뒤에 있다. 조선 초기 문신인 매설헌 조완규의 단비로 조순원이 비문을 짓고, 박황이 글씨를 썼다. 매설헌 조완규는 계유정난에 연루되어 귀양지에서 졸(卒)하였고, 가족과 아우, 종제 등이 피해를 입었다. 1791년 2월 25일 정조가 장릉 아래 단을 쌓고 세조 즉위와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32인을 제사하게 하였는데 매설헌 조완규는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암각]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가산산성 안에 “가암(架巖)”과 “반암(盤巖)” 그리고 “낙금대(樂琴臺)”가 있으며, 지천면 창평리 입석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1.15 오류 정정 오 : 완정 이선생 유허비(浣亭 李先生 遺墟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 있는데 조선 중기의 문신인 완정(浣亭) 이언영(李彦英)의 유허비이다. 김홍이 비문을 지어 1568년에 건립하였다. 정 : 완정 이선생 유허비(浣亭 李先生 遺墟碑)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 있는데 조선 중기의 문신인 완정(浣亭) 이언영(李彦英)의 유허비이다.
이용자 의견
김** 암각 중에서 가산산성 안에 "架ㅁ巖"은 가산바위 정상의 "架巖" 옆에 위치한 "盤巖"반암인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세글자가 아니라 두 글자입니다.
  • 답변
  •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내용은 수정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이용 부탁드립니다.
2015.07.06
관**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리며, 해당 내용 반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1.15
이** 위 이언영 유허비를 찬한 분은 김굉(金 土+宏)이신데 上之15년, 乙亥(즉 1815년)에 쓰셨으니 유허비를 세운 연대는 1815년이 아니면 이후가 아닌가 추정됩니다.
1568년은 완석정 이언영의 생년입니다. 수고하세요
2013.01.12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