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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278
한자 李世載不忘碑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Yi Seje in Namwon-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636-1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인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정비
건립시기/일시 조선 후기/1708년 10월연표보기
관련인물 이세재
재질 화강암
높이 162㎝
너비 45㎝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636-16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가산산성 안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이세재의 선정비.

[개설]

이세재 불망비가산산성의 외성을 축조한 관찰사 이세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708년(숙종 34) 10월에 고을의 백성들이 세웠다. 이 비석은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주민들이 정월 보름날에 제사하는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되어 있어 특이하다.

이세재[1648~1706]의 자는 지숙(持叔), 본관은 용인(龍仁),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낸 이하악(李河岳)의 아들이다. 1669년 사마시에 합격, 1694년 알성문과(謁聖文科) 을과에 급제하였다. 대간직(臺諫職)과 동래부사를 역임하고, 1698년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가산산성 외성을 축조하였다. 1701년 평안도관찰사, 1703년 한성부우윤을 거쳐 대사간·도승지·경기도관찰사·형조참판(刑曹參判)을 역임하고 1706년 사망하였다.

[건립경위]

가산산성 외성을 축조하여 국방을 튼튼히 한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708년 5월에 남북창(南北倉)과 천주사(天住寺)에서 이 비석을 세웠다.

[위치]

이세재 불망비는 가산산성 진남문 북쪽 150m 정도에 있는 해원정사 뒤에 있다.

[형태]

이세재 불망비는 비각과 비신, 비좌 등을 갖추고 있다. 비석의 총 높이는 162㎝이며, 비신은 높이 105㎝, 너비 45㎝, 두께 14㎝이다. 1708년에 비석을 세우고 후에 비각을 세웠다. 비석의 앞면 가운데에 ‘관찰사이상국세재풍공지엄영세불망비(觀察使李相國世載豐功至嚴永世不忘碑)’를 새기고 좌우에 비명(碑銘)을 새겨 넣었으며, 그 옆에는 ‘갑술오월 일 남북창 천주사 입(甲戌五月 日 南北倉 天住寺 立)’의 비석 건립 연대와 건립의 주체를 새기고 있다.

[금석문]

비석 앞면에 새겨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觀察使李相國世載豊功至嚴永世不忘碑

國家柱□ 功高保障 □外干城 澤冾殘氓 卒伍隊整 於□不忘 軍需庫盈 勒石留名

甲戌五月 日 南北倉 天住寺 立”

[현황]

가산산성 내에 위치하고, 비각이 건립되어 있어 보존 상태가 비교적 좋다.

[의의와 평가]

가산산성의 외성을 축조한 이세재의 행적과 산성 축조와 관련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중요하다. 또한 이세재 불망비는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서 매년 정월 14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남원리 주민들이 금기하고, 보름날 새벽에 제사를 지낸다. 비석이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된 예가 흔하지 않으므로 민속학적으로도 상당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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