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원마을
-
매원리에서는 2008년 8월부터 지금까지 골프장 건설로 인한 환경오염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며 평화적 집회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소바우골 아래 매원천을 사이에 두고 마을 맞은편에 텐트 4동과 모닥불로 매일같이 그 곳을 지켜온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천의 오염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 곳에 가니, 텐트 한 동에서는 집회현장에 모인 마을 사람들을 위해 식사를 마련하...
-
매원마을이 시작되는 삼거리슈퍼에서 마을을 따라 늘어선 마을 안길 한가운데 촘촘한 담벼락을 따라 조그만 골목길로 들어서면 단정하게 정리된 해은고택을 만날 수 있다. 1788년(정조 12)에 이동유(李東裕)[1768~1836]가 건립한 가옥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75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랑채는 1816년(순조 16)에 건립되었으며, 손자인 이이현(李以鉉)의 호를 따...
-
마을의 모습이 매화와 같아 매원인 매원마을에는 매화나무도 많지만, 유실수인 포도나무도 많고 특히 참외농사도 많이 짓고 있다. 마을에서 소바우골을 바라보면 나지막이 앉아 있는 산 아래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하우스들을 볼 수 있다. 참외농사와 포도농사를 같이 한 거냐고 물어 봤더니, 이동진 씨 부인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 주었다. “포도는 좀 뒤에 했지. 참외를 먼저 했는데, 옛날에...
-
매원마을에는 「대원군과 풍각댁 벼루사건」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풍각댁이라 불리는 이동형은 가난한 선비로서, 대사헌을 지낸 이원록의 현손이다. 그가 곡식이 3천 석이 넘는 부자가 되기까지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동형은 책을 읽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소똥과 개똥을 주워 모았다. 그 거름이 산 무더기처럼 되던 어느 날 사람들이 찾아와 거름을 팔라 했지만, 그는 팔...
-
매원리는 동쪽에는 죽곡산, 서쪽에는 산두산, 남쪽에는 안산, 그리고 북쪽에는 용산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 모양이 매화와 같다 하여 매원(梅院)이라 불린다. 마을이 가장 잘 보이는 소바우골에서 매원을 내려다보면 산들로 둘러싸인 마을의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매화처럼 보인다. 예부터 마을이 보이는 곳에는 무덤조차 설 수 없던 금장지구 매원리는 지금도 전통의 모습...
-
매원리의 중매와 서매를 잇는 삼거리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삼거리슈퍼 건물은 12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가옥이다. 지금은 14년 전 세상을 떠난 홍관호 할머니의 빈자리를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인수 받아 슈퍼를 이어오고 있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홍관호 할머니는 그 삼거리슈퍼에서 4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1924년생인 홍관호 할머니는 매원에서만 14대째...
-
광주이씨가 경상북도 칠곡 지역에서 집성촌을 형성하게 된 것은 광주이씨 선조 둔촌(遁村) 이집(李集)의 증손되는 좌통례(佐通禮) 이극견(李克堅)이 약 500여 년 전 성주목사가 되어 내려올 때 둘째 아들인 승사랑(承仕郞) 이지(李摯)를 책방도령으로 데리고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지는 그 후 팔거현(八筥縣)[칠곡의 옛 이름]에서 가법을 지키는 최하(崔河)의 딸과 결...
-
매원초등학교 에서 매원리로 들어가는 조그마한 길을 따라가면 주유소가 나온다. 이 주유소 앞을 지나 첫 번째 골목길로 약 10m 정도 들어가면 듬성듬성 나 있는 나무 사이로 조그마한 나무 하나가 짚으로 싸여 있다. 이 나무가 13년 전까지 동제를 지내던 매원2리 동제나무이다. 몇백 년이란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이 동제를 지낸 나무라고 하기에는 왜소한 모습인데, 사...
-
매원리는 동쪽에는 죽곡산, 서쪽에는 산두산, 남쪽에는 안산, 북쪽에는 용두산이 둘러싸고 있는데, 멀리서 보면 그 모양이 매화와 같다 하여 매원(梅院)이라 불린다. 일부 문헌에서는 ‘매골’이라고 불리기도 하나, 현지조사 결과 매골이란 표현은 현재 쓰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선시대 이곳에 원(院)이 있어 매원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하며, 일설에는 반송·서매·신매·...
-
매원마을은 예부터 마을에서 보이는 곳에는 묘를 쓸 수 없는 금장지구(禁葬地區) 풍습이 전한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광주이씨가 매원에 세거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풍습이 생겼는데, 광주이씨뿐만 아니라 타성들까지도 마을에서 보이는 곳에 묘를 쓸 수 없었다고 한다. 마을이 생성되고 5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금장지구는 여전히 지켜지고 있었는데, 이는 매원에 주요 세거지...
-
경상북도 칠곡군의 사대부가에서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 사대부가에서 조상의 신주나 영정을 모셔두고 배향하는 집으로 가묘(家廟)라고도 하며, 왕실의 것은 종묘(宗廟)라고 한다. 사당은 조선왕조 중기 이후 철저히 실행되었는데, 사대부가에서는 선조의 신위를 모시는 가묘 형태의 사당을 둘 수 있었고, 제사를 목적으로 묘소 주변에 재각(齋閣)을 둘 수 있었다....
-
매원리는 원래 파미면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매원동이라 하고 왜관면에 편입되었다. 매원리는 2009년 현재 행정구역상 1, 2, 3리로 나뉘나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1, 2, 3, 4리로 구분되어 있었다. 매원리에 위치한 자연마을로는 반송이, 상매, 중매, 서매 그리고 새마[일명 신매]가 있는데, 매원1리는 상매와 반송이, 매원2리는 중매...
-
풍수설에서 말하는 배산임수의 사전적인 의미는,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켜, 죽은 사람을 묻거나 집을 짓는 데 알맞은 장소를 구하는 이론을 말한다. 즉 사람이 살기 좋게 바람을 막아 주고, 물이 풍부하여 사람들이 정착하며 살기 좋은 곳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매원리는 용두산이 나지막히 마을을 감싸 돌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장원봉이, 동북쪽으로는 도락산에서 시...
-
2008년 9월 매원리 사람들은 매원천 건너편에서 골프장 반대 가두집회를 열고 있었다. 그런데 여느 집회와는 다르게 평화적으로 진행된 이번 매원리의 집회 구성원들은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들뿐이었다. 유난히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많이 거주하는 매원리는 의료보험조합에서 지정한 장수마을이며, 금연마을이기도 하다. 이는 매원마을에 거주하는 마을 사람 중 대부분이 80세 이상의 노인이며,...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 있는 이윤우가 강학했던 정사. 감호당은 조선시대 경성판관, 담양부사를 지내고 흥학에 힘쓴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1569~1634]가 매원마을의 자연 풍광에 매료되어 만년에 강학하며 거처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감호정사라고도 한다. 후에 아들인 이도장(李道章)[1607~1677]에게 물려주게 되었고, 이도장은 여기에 거처하며...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 중방댁은 1860년에 건립된 상류 주택으로 정침과 대문간채 일부가 남아 있고, 아랫채를 비롯한 몇 동의 건물이 퇴락해 소실되었다. 근년에 관리인이 개조·수리해 사용하고 있다. 매원마을 해은고택 바로 앞집으로 넓은 평지에 정침과 우익사·대문간채가 ‘ㄴ’자형으로 남아 있다. 대문간채 옆으로는 아래...
-
1970년 4월 22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가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가꾸기운동을 제창하여, 1971년부터 새마을가꾸기운동은 전국적 범위로 확대되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새마을운동중앙회가 사단법인으로 발족되었는데, 이로써 새마을운동은 정부 추천방식에서 민간조직(단체) 위주로 탈바꿈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당시 새마을운동중앙회는 새마을운동을 효율적으로 펼쳐나가기 위해 6개...
-
매원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동진 씨에 따르면, 약 5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매원마을의 번창기에는 300여 채의 한옥과 200여 채의 초가집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2009년 현재 매원마을에 남아 있는 전통가옥은 60여 채 정도 되나, 대부분 형태를 변화시켜 실제 매원마을에 보존되고 있는 고가는 몇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300여 채의 전통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