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산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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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산1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여 년 전 인동장씨 장만중이 인동 남산에서 ‘좌우 산천을 둘러보니 북쪽에 우뚝 솟아 있는 산과 골짜기가 좋아서 정착’하게 된 곳이라고 한다. 그 후로 마을에 정착한 사람들이 수령이 오래된 나무와 바위, 샘 등 자연 자원과 골짜기마다의 지형적 요소와 특색에 맞게 이름을 붙여서 오늘에까지 부르고 있는 것이다. 옛날 각산1리에서 약목장을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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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동네가 글 읽는 소리로 가득했다는 각산1리에는 한때 경상북도 중부 이남에서부터 서남부 경상남도를 중심으로 김해, 밀양, 고성 등 경상남도 전역과 전라도 지역에서까지 조랑말을 타고 글을 배우러 왔다고 한다. 각산1리는 굽이굽이 3~4㎞는 되는 골짜기를 넘어야 보이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외길이었고, 양쪽에 여러 마을이 있었지만 대부분 농토가 부족했던지라 가난을 면치 못했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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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탁 씨의 머릿속에는 나고 자란 각산1리 온 마을이 구석구석 훤하다. 골목골목 집이 몇 채나 있는지, 그 집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또 지금은 사라져 버린 옛날의 마을 풍경은 뭐였는지까지. 산골마을 골짜기 골짜기마다 무엇이 있고 이름은 무엇인지. 심지어 그 이름의 유래까지……. 마을의 토박이로서 그의 고향 사랑은 그의 기억만큼이나 특별하다. 2009년 현재 마을 입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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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산1리 주민들의 자랑거리 중에는 1993년 8월 11일 칠곡군목으로 지정된, 수령이 910년 정도 되는 은행나무가 있다. 은행나무는 퉁지미마을 안에 있는 대흥사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데, 나무 앞에 큰 돌 두 개가 제단처럼 평평하게 놓여 있어서, 이것만 보면 예전에 이곳에서 제를 지냈으리라 추측되지만, 각산1리가 워낙 양반동네인지라 특별히 동제를 지내거나 그런 일은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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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으로 매월 15일과 30일은 각산1리 노인회 회원들이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날이다. 약 10여 년 전부터 칠곡군 행정과에서 소액이지만 예산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동네 마을회관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시는 것이다. 음식 준비는 노인회 할머니들이 하시는데, 매해 두 명을 당번으로 정한다. 당번을 맡은 할머니는 총 24번의 음식을 준비해야 하기에 할머니들 중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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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한기가 되면 삼삼오오 마을회관에 모여 고스톱을 치는 게 낙이라는 각산1리 할머니들이지만, 얼마 전까지도 회관에는 여자들이 올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바깥출입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은 “지금 여자들은 시대를 참 잘 타고났다.”며 부러움 반, 놀림 반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요즘 세대에서는 자유롭게 드나드는 친정집이 할머니들에게는 참 가깝고도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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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산1리는 두 개의 저수지를 경계로 북쪽의 산골마을과 서당·재실이 많은 남쪽의 선비마을로 나뉘는데, 인구수에 비해 실제 분포 면적은 다른 마을들에 비해 넓다고 할 수 있다. 선비의 글소리가 사라진 오늘도 천혜의 자연은 살아남아 각산을 빛내고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각산1리 북편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비룡산이다. 비룡산에는 대흥사와 비룡사, 약사불원 등 3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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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지미마을 에는 현재 대흥사와 비룡사 두 곳을 제외하고 세 가구가 살고 있다. 그리고 그 퉁지미마을에는 산을 닮아 넉넉하고 깊은 품을 가진 김병탁 씨가 산다. 김병탁 씨는 경주김씨로 5대째 각산1리에 살고 있다. 산골에서 살다 보니 서당에서의 추억보다는 산에서의 추억이 더 많다. 김병탁 씨 역시 14~15세 무렵 마을 서당에 다니며 천자문을 배운 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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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산1리는 북쪽으로 비룡산과 서진산을 사이에 두고 약목면과 경계를 짓고 남쪽으로는 지경령(地境嶺)을 사이에 두고 성주군 월항면과 경계를 이룬다. 이 때문에 각산1리는 예부터 통혼권에서부터 시장 등 일부 생활문화권이 칠곡군 약목면 및 성주군 월항면과 같았다. 이런 이유로 이 두 지역을 통해 옛 각산1리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는 것이다. 각산1리 지역은 원래 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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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산리(角山里)는 북쪽으로 비룡산(飛龍山)과 서진산(棲鎭山)이 약목면과 경계를 짓고, 서쪽으로는 서진산 줄기가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성주군 월항면과 경계를 이루며 지경령(地境嶺)으로 통하고 있다. 각산, 서치, 남바우, 퉁지미, 우새터, 양촌 등 여섯 개의 자연마을로 나뉘어 있는 각산1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 인동장씨(仁同張氏) 장만중(張萬重)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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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는 소리가 늘상 울려 퍼지던 선비마을 각산1리에서 1년 중 딱 하루, 아이들이며 부녀자들의 웃음소리가 담장 밖으로 새어 나가도 꾸지람을 듣지 않은 날이 있었다. 모든 것이 용인(容忍)되던 그 날은, 음력설을 새고 정월 대보름이 되기 전의 딱 하루였단다. 1년 중 제일 큰 행사인 명절을 보내고 정월 대보름이 되기 전, 그러니까 농촌사회에서는 농한기에 해당하여 부녀자들이 제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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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추(張福樞)[1814~1900] 선생은 개화기 영남의 삼징사(三徵士)[장복추·김흥락·류주목]이자 삼학자[장복추·이진상·김흥락]의 한 분으로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호는 사미헌(四未軒) 또는 녹리산인이다. 칠곡군 기산면 각산1리에서 태어난 사미헌은 여헌(旅軒) 장현광의 9세손이다. 여헌으로부터 내려오는 가학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미헌은 조부 각헌공에게 특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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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장씨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 여헌 장현광(張顯光) 선생의 증손 4형제, 곧 만중(萬重)을 비롯한 만취, 만익, 만성이 인동 남산에서 양촌(陽忖)으로 옮겨 살다가 각산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마을 주민 장세완 씨에 따르면, 장세완 씨의 11대조인 소매당 장벽의 묘소를 시작으로 1700년대부터 마을에 인동장씨가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동장씨가 각산1리에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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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산1리에는 사미헌 선생 외에도 훌륭한 인물이 많다. 사미헌 장복추[1815~1900] 선생은 은일(隱逸)[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사람에게 내리는 벼슬]로 경상도도사와 가선대부부호군으로 개화기 유학의 선비들이 우러러보는 큰 학자였다. 장시윤은 의금부도사를 지냈고, 장응표[후에 시표로 이름을 바꿈]는 문과에 급제한 뒤 이조참판을 지냈다. 장지복, 장대지 등은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