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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237
한자 倭館
영어음역 Waegwa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금산리|약목면 관호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정의]

조선 시대 경상북도 칠곡군을 포함한 남부 해안 지역 등에 일본인 사신과 교역자들이 머물며 외교 및 물자를 교역하던 장소.

[개설]

조선 시대 일본인이 조선에서 외교·통상을 하던 무역처·숙박처·접대처로서의 기능을 가진 곳을 왜관(倭館)이라 하였다. 칠곡군 왜관의 명칭은 왜관 언저리에 조선 성종 때부터 낙동강 하류에서 뱃길을 따라 올라온 왜물(倭物)을 서울로 실어가기 전에 보관해 두었던 창고인 왜물고(倭物庫)가 위치한 데서 생긴 이름이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왜관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왜구(倭寇)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태종 때 일본인 사신이나 교역자들이 머물게 하고 물자를 교역하게 하던 장소였다. 관(官)에서 관리하던 왜관으로는 부산포[초량], 제포[창원시 진해구], 염포[울산] 및 서울 동성관[현재 인사동] 등이 있었으며, 무역·숙박·접대 시설을 갖추고 관리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일본인들을 위하여 관리한 해안에 왜관으로 부산 두모포(豆毛浦), 절영도(絕影島), 가배량(加背梁) 및 초량(草粱) 등과 낙동강을 이용하는 중간 숙소인 소규모 왜관으로 칠곡군 약목면 관호리, 왜관읍 금산리 강창, 김해, 창원, 화원 등 5개소 도합 10여 개소를 설치하였다. 현재는 모두 역사적으로 기록만 남기고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으나, 칠곡군에만 ‘왜관’이란 지명으로 남아 있다.

칠곡은 대구와 인접하고 영남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교통이 편리하며 인적·물적 왕래가 많아 상업이 발달할 수 있는 입지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칠곡의 중앙을 흐르는 낙동강은 대구의 주요한 나루인 화원에 이르고 좀 거슬러 올라오면 현재의 칠곡군 왜관읍 금산리 강창에 창고가 있었다. 현재의 칠곡군 약목면 관호리석적읍 중지리 창마에 창고를 두고 낙동강 수운을 이용하여 조세와 군량을 수송하고, 왜국과 무역을 하였다.

[변천]

조선 시대의 왜관약목면에 있었다. 칠곡군 약목면 관호 2리는 일본 사절이나 상인들의 편리를 제공하는 왜관이 설치 운영되었던 마을이라 왜관으로 불렸다. 낙동강 임호정 나루터[倭館津]가 자리하고 있어 경상도 내의 중요한 상품 집산지였으며, 남으로는 비옥한 농토가 넓은 평야를 이루었다. 당시 가구 수는 약 100여 호, 인구는 약 500여 명 정도였다.

1905년 일본인들이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칠곡군 약목면 관호 2리의 왜관에 역을 설치하려고 하였으나, 그 지역에 백포산(栢浦山)이 있어 기관차 운행 시 시야가 가려지고 주위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낙동강 건너 지대가 넓은 칠곡군 파미면 회동으로 옮겨 역을 세우고 왜관역이라 하게 되면서부터 파미면 회동을 왜관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자 그동안 왜관이라 부르던 칠곡군 약목면 관호 2리는 구왜관(舊倭館)이라 부르게 되었다.

낙동강 오른쪽에 있던 왜관경부선 개통 이후 왜관역이 입지한 왼쪽으로 그 기능을 옮기면서 철도와 수운의 교차로로서 더욱 발달하였다. 경부선은 경상도 내에서 낙동강을 따라가는 노선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낙동강 본류 주변은 철도 교통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경상남도의 삼랑진과 마찬가지로 왜관은 낙동강 수운과 철도 사이에 물자를 옮겨 싣는 길목이 되어, 일제 강점기 이후 오히려 번창한 포구가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군청이 왜관으로 옮겨 왔으며 경제적으로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의의와 평가]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지금의 왜관은 일본인 외교 사절이나 무역상의 편리를 제공한 왜관이 설치되었거나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던 지역이 아니다. 남쪽 파산(巴山)[일명 달오산]이 노곡면(蘆谷面)[지금의 칠곡군 왜관읍 금산리·낙산리·금남리]과 경계[彌]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라 ‘파미면(巴彌面)’이라 불렸으나, 1905년 1월 경부선 왜관역이 개통되면서 역의 이름을 따라 ‘왜관(倭館)’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원래의 왜관은 ‘구왜관(舊倭館)’으로 부르는 지금의 약목면 지역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4.11 오류 수정 제물포[창원] -> 제포[창원시 진해구]
2013.10.01 [변천] 수정 <변경 전>8월 4일에 왜관 일대의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낙동강 다리를 모두 폭파했다. <변경 후>8월 3일에 왜관 일대의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낙동강 다리를 모두 폭파했다.
2013.08.07 [변천] 수정 <변경 전>왜관은 행정구역상 인동군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칠곡군에 흡수되면서 군청에 옮겨 왔으며 <변경 후>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군청이 왜관으로 옮겨 왔으며
2013.08.07 [변천] 수정 <변경 전>왜관 포구와 기차역을 연결하기 위해 왜관궤도가 건설되었다. 노선은 왜관 읍내에 한정되어 길이가 1.1㎞에 불과하였다. <변경 후> 왜관역에서 낙동강포구까지 약700M 거리에 인력용 4륜 철수레가 다니는 협궤철로(狹軌鐵路)가 건설되어 운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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