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650
한자 李彦英
영어음역 Yi Eonyeong
이칭/별칭 군현(君顯),완정(浣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헌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학자
출신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성별
생년 1568년연표보기
몰년 1640년연표보기
본관 벽진
대표관직 좌부승지

[정의]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군현(君顯), 호는 완정(浣亭). 벽진장군(碧珍將軍) 이총언(李悤言)을 시조로 하고, 진사(進士) 이인손(李麟孫)을 칠곡(漆谷) 입향조로 하는 벽진이씨로, 좌랑 이등림(李鄧林)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월성최씨, 부인은 현풍곽씨이다.

[활동사항]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1591년(선조 24)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효도와 청렴으로 순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03년(선조 36)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으나 학문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며 벼슬길에 나갈 뜻이 없었다. 1614년(광해 6)에 정온(鄭蘊)이 항의(抗議) 상소를 하여 광해군의 분노를 사서 위험한 지경에 처하자 정온을 구하기 위해 힘쓰다가 광해군에게 삭탈관직 전귀방리되었다.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사유(師儒)의 부름이 있었다. 1625년(인조 30)에 삼사(三司)에서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의 죄에 대하여 논함에 『춘추(春秋)』의 글귀를 외우면서 증거를 삼아 오로지 은덕을 힘써 주장하였다. 관직은 좌부승지에 이르렀으며, 타고난 천품이 고결하고 기우(氣宇)가 엄정하였다. 충효는 천성적으로 타고났고 총명이 남보다 뛰어나고 학문이 순수하면서 올바랐다. 시문을 엮어 만든 책이 있다고 전해지며,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서 살았다.

[묘소]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대성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문간공 조경(趙絅)이 비갈을 짓고 문정공 허목(許穆)이 완석정기(浣石亭記)를 지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