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7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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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永駣 |
영어음역 | Jang Yeong Jo |
이칭/별칭 | 장영조(張永眺)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윤오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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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성곡동 750[현 성곡리]![]() |
성별 | 남 |
생년 | 1870년 8월 24일![]() |
몰년 | 1947년 3월 20일![]() |
본관 | 인동 |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0년(고종 7) 8월 24일에 칠곡군 석적면 성곡동[현 성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가운데, 4월 9일의 성곡동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2월 형을 받았다.
1919년 3·1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칠곡군에도 인동과 북삼·약목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석적면 성곡동·중동에서는 문중 일가를 중심으로 분위기가 고조되어 성곡동에서는 장영조(張永駣)와 장병규(張炳圭)·박팔문(朴八文)·장준식(張俊植)·장재식(張在植) 등이 나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4월 9일 밤 8시에 이웃마을 중동과 호응하며, 마을 앞 밭 가운데에 50여명 중 판결물은 36명 모여 독립만세를 높이 외치고, 이튿날 4월 10일 밭에서도 시위하였다. 장영조는 주동자로 체포되어 같은 해 5월 17일에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83년에 대통령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