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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804
한자 獨立運動
영어의미역 Independence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대웅

[정의]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개설]

조선 후기 국권회복 운동으로 전개된 의병전쟁과 계몽운동, 그리고 구국운동은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조국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이리하여 독립운동은 1919년 3·1운동과 1920년대 국내외의 무장투쟁으로 발전하여 근대적인 국민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민족운동으로 승화되었으며, 1930년대 이후 군국주의 일본의 전쟁 수행을 반대하고 나아가 조국 광복을 목표로 국내외에서 항일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조선 말기 국권회복 운동]

국권회복운동은 의병전쟁과 계몽운동, 그리고 구국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칠곡군의 경우 국권회복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의병전쟁에서 독자적인 의병부대의 결성은 없었지만, 칠곡 출신의 장준호(張俊灝)·장성우(張性愚)·손기찬(孫基瓚) 등이 영천에서 결성된 산남의진에 투신하였다. 한편 계몽운동에서 칠곡 출신의 인사들은 계몽운동단체 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 그리고 교남교육회에 참여하였다. 1906년 조직된 대한자강회의 회원으로 칠곡 출신 장지연(張志淵)·강원형(姜遠馨)이 참여하였고, 1908년 11월 칠곡군에는 대한협회 인동지회가 설립되었다. 대한협회 인동지회는 대한협회 인동군시찰원 윤효정이 참석한 가운데 옥성학교에서 발기회가 개최되었는데, 회장 장지영(張志英)·부회장 홍종순(洪鍾舜) 등이었다. 그리고 1908년 3월에 조직된 교남교육회에 참여한 칠곡 출신은 장길상(張吉相)[인동]·장정상(張正相)[인동]·이상화(李相和)[칠곡] 등이었다. 칠곡 지역에서 전개된 계몽운동은 신교육기관인 사립학교가 설립되어 신교육 구국운동을 실천하였다. 뿐만 아니라 칠곡 출신의 인사로 강원형 등은 언론상소운동을 통해 구국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10년대의 독립운동]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일제의 무단폭압 정치 하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은 대한독립의군부,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 등 비밀결사에 의해 전개되었다. 칠곡군의 경우에는 비밀결사의 투쟁 과정에서 의병 계열의 대한광복회가 벌인 경상도관찰사 장승원(張承遠) 암살사건(暗殺事件)이 일어난 지역이었고, 산남의진에 참가하였던 손기찬(孫基瓚)이 회원이었다. 한편 계몽운동계열의 비밀결사 대동청년단에 참여한 장건상(張建相)[칠곡]·신상태(申相泰)[칠곡], 조선국권회복단에 참여한 장석영(張錫英) 등이 있다. 그 외 일제의 은사금 거부 및 세금거부를 통해 일제의 식민통치를 부정하고 단식자결한 유병헌(劉秉憲)의 투쟁도 주목된다.

[1919년의 3·1운동]

칠곡 지역에서의 3·1운동은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운동의 영향으로 전국 각처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의 소식을 듣고, 1919년 3월 12일 인동면 진평동을 필두로 같은 해 4월 9일까지 약목·석적 등지에서 전개되었다. 칠곡의 3·1운동은 1919년 4월 대구에서 결성된 비밀결사 혜성단(慧星團)의 항일투쟁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혜성단의 단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칠곡 출신은 이영옥(李榮玉)·이명건(李命健)[일명 李如星]·이덕생(李德生)·이수건(李壽鍵) 등이었다. 한편 유림단의 독립청원운동인 파리장서사건에 참여했던 장석영(張錫英) 등의 활동도 주목된다.

[1920년대의 독립운동]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은 국내외의 무장투쟁으로 발전하여 근대적인 국민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민족운동으로 승화되었다. 특히 국내에서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단체들이 전개한 무장투쟁과 국외인 만주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단체의 무력 항쟁, 그리고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칠곡 출신으로 장석영·이수일(李壽逸)·장익원(張翼遠) 등은 1924년 유림단의 독립운동자금모집사건에 관여하였고, 정명준(鄭命俊)은 진우연맹사건(眞友聯盟事件), 장택원(張澤遠)은 ‘ㄱ’당사건(‘ㄱ’黨事件), 장진홍(張鎭弘)대구조선은행지점투탄사건(大邱朝鮮銀行支店投彈事件), 이덕생(李德生)은 만주 군정서의 의용병 및 군자금모집사건 등을 통해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한편, 1919년에 창립된 왜관소년회(倭館少年會), 1920년 8월에 창립된 왜관청년회(倭館靑年會), 1926년에 창립된 칠곡청년연맹(漆谷靑年聯盟), 1928년 4월에 결성된 신간회 칠곡지회(新幹會 漆谷支會)의 활동도 주목된다.

[1930년대 이후의 독립운동]

1930년대 이후 항일 독립운동은 군국주의 일본의 전쟁 수행을 반대하고 나아가 조국 광복을 목표로 국내외에서 전개되었다. 칠곡 출신으로 권쾌복(權快福)[인동]은 1938년 대구사범 학생의 소위 왜관사건(倭館事件)에 연루되었고, 왜관 출신의 전경원(全京元)[왜관]은 일본 경도에서 재일교포의 항일 사상을 고취하였다. 그리고 일본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옥성신정(玉城信正)[왜관]과 산본상문(山本相文)[칠곡]은 징병 반대 등을 통해 조선 독립을 부르짖다가 체포되어 형을 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2.09 인명 한자 오류 수정 孫基燦 -> 孫基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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