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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779
한자 張龍浩
영어음역 Jang Yongh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76|미국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윤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미국 교포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동 76[현 남계리]지도보기
성별
생년 1883년 6월 15일연표보기
몰년 1932년 9월 3일연표보기
본관 인동
대표경력 미국 대한인국민회 와이오밍 지방회장

[정의]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미국 교포 독립운동가.

[개설]

1883년 6월 15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동[현 남계리]에서 태어나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고향에 일시 귀국하였다. 1917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 가 와이오밍주(州)에 정착한 후, '대한인 국민회(大韓人 國民會)'에 참여하여 한인(韓人) 결집을 선도하고, 상해 임시정부의 애국공채(愛國公債)를 발매·송금하는 등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활동사항]

미국의 대한인 국민회는 1909년에 하와이의 합성협회(合成協會)와 본토의 공립협회(共立協會)를 통합하고, 이듬해는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까지 통합함으로써 마침내 하나의 동포 조직으로 뭉쳐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본부는 로스엔젤레스에 두고 중앙총회 산하에 하와이·시베리아·만주 등지에 지방총회, 그 아래 116개의 지방회를 조직하여 초대 중앙총회장은 안창호(安昌浩)가 맡아 활동하였다.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장용호는 미주 지역 한인들의 결집과 상해 임시정부 지원에 적극 나섰다. 1920년에 임시정부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워싱턴 소재]의 슈페리오 지방 총무에 선임되자, 임시정부 애국공채를 발매하여 상해로 송금하였다. 1921년에 '대한인국민회 와이오밍주 지방회'의 회장에 선임되어 교민사회 발전과 독립운동 지원에 헌신하다가, 1932년 채무관계로 피살되었다.

[상훈과 추모]

200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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