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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809
한자 若木水利組合
영어의미역 Yakmok Irrigation Associ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일제강점기 기관
설립연도/일시 1934년 10월 19일연표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에 있었던 수리 조합.

[개설]

일제강점기 수리조합은 대지주 중심의 강제적 추진과 농민에 대한 사업비 전가, 광범한 농민층 몰락과 식민지 지주제 강화, 이에 따른 농민들의 저항 등 수탈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 수리조합 사업은 경제적 타당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사업비 부담도 일방적으로 조선인 지주나 농민에게 일방적으로 전개되지 않았고, 수리조합 사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조선인들도 많았다는 개발론적 견해를 가진 경우도 있다.

[설립목적]

약목수리조합칠곡군 약목면의 남계동과 무림동을 대상으로 일제의 농업 정책인 농촌진흥운동이 진행되던 1931년 3월 31일에 설립되었다. 당시 산미(産米) 증식계획의 일환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수리조합은 식민지 조선의 농업 생산량을 늘려 부족한 일본 본토의 미곡 수요량을 충당한다는 데 있었다.

[변천]

약목수리조합의 설립 추진은 1925년 5월부터 시작되었고, 혜택 면적은 100정보를 대상으로 하였고, 공사비는 5만원 정도 들 것으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약목수리조합 설립 단계에서 농민들의 설치 반대 운동에 부딪쳐 설립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1926년에는 수립조합의 혜택 면적을 155정보로 늘려 추진하였으나 이때도 곧바로 설립되지 못했다. 결국 약목수리조합칠곡군 약목면의 남계동과 무림동을 혜택 지역으로 하여 일제의 농업 정책인 농촌진흥운동이 진행되던 1934년 10월 19일에 설립되었다.

[활동사항]

수리조합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5명 이상의 설립자가 조합규약을 만들어 조합원이 될 자 1/2 이상으로 조합 구역이 될 토지 총 면적의 2/3 이상의 해당하는 토지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동의서와 사업계획서를 총독부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실제 대다수 농민들은 이미 결정된 사업 계획에 대한 동의 여부의 선택만이 있었을 뿐이다. 수리조합이 설립된 후에는 설립 목적이 산미 증식계획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던 만큼 당시 칠곡군의 미곡 수요량을 충당하기 위해 토지 및 생산량 등을 관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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