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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산성 전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831
한자 架山山城戰鬪
영어의미역 Battle of Gasansanseong Fortres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동명면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6·25 전쟁
발생(시작)연도/일시 1950년 8월 18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50년 8월 27일연표보기

[정의]

1950년 8월 18일부터 8월 27일까지 경상북도 칠곡군의 가산면동명면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개설]

조선 인조 때인 1640년에서 1648년까지 축조된 가산산성은 칠곡군에서 가장 높은 가산 준령에 있는 천혜의 요새이다. 가산은 해발 902m 높이에 가산면 가산리에 위치해 있으며, 칠봉산(七峰山)이라고도 하며 팔공산의 끝자락에 위치한 산이라고 하여 갓산이라고 일컫다가 지금의 가산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발단]

8월 18일 가산산성에 진출한 북한군 게릴라 부대가 동명(東明)에 주둔한 제11연대 본부와 미군 포병부대를 습격해 왔다. 국군 제11연대 본부중대는 곧바로 적을 격퇴하였으나 현지에 갓 도착한 미군 야전 포병대대는 한때 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북한군 유격대가 금호강변까지 침투하여 발사한 박격 포탄이 대구역에 떨어져 역원과 민간인 여러 명이 사상(死傷)되는 피해가 발생하였다.

[경과]

8월 20일 새벽 1시 무렵 북한군 게릴라 부대가 동명 초등학교에 주둔한 사단 사령부를 기습해 왔으나 면사무소에 배치된 공병 대대가 기관총 사격을 가하고 제10연대 병력이 반격하여 북한군을 막아 냈다. 같은 날 아침에 사단은 전날 배속된 제10연대의 제2대대를 741고지에 투입하고 제3대대는 가산산성의 북한군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이날 제3대대는 570고지에 진출하여 두모(豆毛)-원당(元堂)[남원2리]으로 이어진 작은 길로부터 공격을 감행하였다. 공군의 폭격과 한·미 야포의 포격 후 대대는 성벽을 타넘어 성안의 북한군을 공격하여 산성을 점령하였다. 제2대대도 금화계곡을 경유하여 741고지를 탈환하였고, 다음날 568고지까지 진출하였다.

같은 날 오후 4시 기계-안강 전투를 끝내고 동명에 도착한 제10연대 제1대대는 북한군 침투 보급로와 퇴로를 봉쇄하기 위해 대둔(大屯)-가산 2리의 윗산당(山堂)에 투입되었다. 제1대대는 송림[구덕리]-원당[남원 2리]을 경유하여 가산 1리의 북창(北倉)에서 숙영하였다. 8월 22일 새벽 5시에 제1대대는 윗산당으로 진출하여 북한군 중간 보급소 1개 중대를 타격하고 진지를 구축하였다. 이날 밤 다부동 정면[볼링엘링]에서 북한군 제13사단이 견제 공격을 펴고 있는 사이, 군위군 효령면에서 은밀히 가산산성 일대로 침투 대기하던 북한군 제1사단 제14연대가 후방으로 내려와 주 보급로인 국도를 차단하고, 자정 무렵에는 미 제23연대와 포병 진지를 기습해와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8월 23일 날이 밝아지자 미 제23연대는 모든 화력을 총동원하는 한편 긴급히 공중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포병부대의 집중 포격이 가해지고, 미 제5군의 전투기와 B-26 경폭격기가 대거 출격하여 약 40톤의 폭탄을 투하하고 5번 도로 동편 일대 고지를 맹폭하였다. 남쪽 도로를 차단하고 있던 북한군은 미 제1기병사단의 사단장이 직접 지휘하는 M-24경 전차부대에 의해 격퇴되었다. 8월 24일에 사단은 가산산성을 완전히 탈환하기 위해 제3연대 제1대대는 남문 쪽을, 제10연대 제3대대는 서문 쪽을 공격하고, 제10연대 제1·2연대는 동·북문 족의 퇴로를 차단토록 계획을 세웠다. 이에 제3연대 제1대대는 기성리(箕城里)로 진출하였다. 8월 25일에 제3연대 제1대대는 757고지를 점령하고, 이틀 동안 산성을 공격하였으나 북한군의 저항에 부딪혔다.

[결과]

8월 27일 새벽 제3연대 제1대대는 4개 중대 병력으로 2개 중대가 횡대로 집중 사격하는 동안 나머지 2개 중대가 20보씩 교대로 전진하는 전법보조행진전법(步調行進戰法)으로 성벽을 뛰어 넘고 남문으로 돌입했다. 두 시간의 전투 끝에 국군은 북한군을 북쪽으로 퇴각시켰고, 서문 쪽의 가산바위까지 진출한 제10연대 제3대대가 1대대와 함께 협공으로 북한군을 공격하여 북한군을 가산리 산당에서 대분 방면으로 몰아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군 제1사단 제14연대는 궤멸되었고, 포위망을 벗어난 북한군 병력도 432고지 골짜기에서 완전히 궤멸되었다. 전투에서 국군 제10연대 제1대대의 경우도 제4중대의 병력 180명이 장교 1명과 병사 10여 명이 남게 되었고, 제1·2·3중대도 각 40명에서 70명으로 감소될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