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985 |
---|---|
한자 | 綾城具氏 |
영어의미역 | Neungseong Gu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연호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세거지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연호리
![]() |
---|---|
집성촌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연호리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중기/1592년경 |
성씨시조 | 구존유(具存裕) |
입향시조 | 구연우(具連佑) |
구존유을 시조로 하고 구연우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 성씨.
능성 구씨(綾城具氏) 시조(始祖) 구존유(具存裕)는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벽상삼중대광 검교상장군(壁上三重大匡 檢校上將軍)을 지냈다. 2세 구민첨(具民瞻)은 문과 급제하고 동평장사(同平章事), 4세 구예(具藝)는 문과 급제하고 중대광(重大匡)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판전의사(判典儀事)를 지냈으며, 5세 구영검(具榮儉)은 선충익찬공신전리판서(宣忠翊贊功臣典理判書) 면성군(沔城君)이며, 6세 구위(具褘)는 소부군(少府君) 증 문화좌정승(贈 門下左政丞)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이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7세 구홍(具鴻)은 호가 송은(松隱)이고 『고려사(高麗史)』와 『송경지(松京誌)』에 의하면 고려 시중(侍中)을 지내고 고려가 멸망함에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갔다. 조선 태조(太祖)가 수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켜 그 충절을 다하였다. 후에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화좌정승(門下左政丞) 면성 부원군(沔城府院君)에 봉하고 시호를 문절(文節)이라 하였다.
9세손 구익령(具益齡)이 의성군사(義城郡事)로서 처음으로 영남으로 내려와 의성(義城)에 세거하게 되었고, 15세 구연우(具連佑)는 호가 오은(梧隱)인데,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호분위장(虎賁衛將)으로 분전하여 큰 공을 세우고 칠곡에 은거하였다. 향의로서 자손들이 추모하여 경오재(景梧齋)를 세우고 계속하여 칠곡군 지천면 연호리에 세거하게 되었다.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많은 문인이 배출되었다. 25세손 구택서(具宅書)는 자가 순화(順和) 호는 귀헌(龜軒)이다. 문인들이 추모하여 귀호재(龜湖齋)를 세워 오늘에 전한다. 입칠곡 후손 약 400여 명이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인구주택총조사 「성씨 및 본관 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140여 가구에 400여 명이 칠곡군 관내에 살고 있다.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연호리에 칠곡 입향조인 오은(梧隱) 구연우(具連佑)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경오재(景梧齋), 구자옥(具滋鈺)이 지은 모련당(慕蓮堂), 구택서(具宅書)를 추모하여 지은 구호재(龜湖齋)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