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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진이씨 민묘 출토 수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1603
한자 碧珍李氏民墓出土壽衣
영어의미역 Shroud from the Grave of Byeokjin Yi Clan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의복/의복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인평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창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수의
재질 면|비단
관련의례 상례
입는 시기 염습할 때 시신에게 입힘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인평리 벽진이씨 문중 무덤에서 출토된 수의.

[개설]

수의는 상례의 절차인 염습할 때 시신에게 입히는 옷이다. 벽진이씨 문중 민묘에서 출토된 수의에는 단단령(單團領), 유직령(襦直領), 유협주음의(襦脥注音衣), 납협주음의(衲脥注音衣), 유방령의(襦方領衣), 납바지, 협바지, 소매, 이불, 모자(帽子), 멱목(幎目), 악수(握手) 등이 있다.

[형태]

벽진이씨 문중 민묘에서 출토된 수의의 형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단령은 흰색의 면과 비단을 재료로 만들었다. 규격은 뒷길이 119㎝, 화장 139㎝, 뒷품 84㎝, 진동 44㎝이며, 앞이 뒤보다 6~7㎝ 짧은 전단후장의 형태이다. 단령은 홑옷이기 때문에 바느질이 매우 정교하며, 등과 어깨에 바대를 달아 겹으로 처리하였다. 유직령은 겉은 갈색이고 안은 아청색(鴉靑色)의 비단으로 만들었다. 규격은 뒷길이 121㎝, 앞길이 111㎝, 화장 125㎝, 뒷품 42㎝, 진동 40㎝로 전단 후장의 형태이다. 겨드랑이 아래로 넓은 무가 달려있으며, 주름이 잡혀있다. 유직령은 직령관복(直領冠服)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망자가 생존했을 때 착용했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유협주음의는 양쪽 겨드랑이 밑으로 주름이 잡힌 무가 달려있는 저고리이다. 규격은 길이 116㎝, 화장 125㎝, 뒷품 90㎝, 진동 42.5㎝이다. 협주음의는 양옆으로 모두 트였으며 주름 잡힌 부분을 넓게 해서 뒷길 안쪽으로 넣어 겹치게 하였다. 이를 고정하기 위한 단추와 고리가 달려 있어 여유 있게 처리함으로써 활동하기에 편리한 차림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같은 종류의 의류와는 구분된다.

세 점의 납협주음의 중 첫 번째는 흰색의 길이 91㎝, 화장 77㎝, 뒷품 66㎝, 진동 34.5㎝의 크기이다. 얄팍하게 솜을 넣어 전체를 누볐으며, 양쪽 소매를 따로 만들어 반주(半紬)의 진동선에서 단추와 고리로 연결시킨 소매의 처리가 특징적이다. 두 번째 납협주음의는 재질은 첫 번째 것과 동일하며, 규격은 길이 92㎝, 화장 96.5㎝, 앞품 66㎝, 진동 34.5㎝이다. 이 납협주음의는 앞길 부분 반쪽만 남아 있는데, 솜을 두툼하게 넣어 누빈 겨울용 의류이다. 길이가 짧고, 크기도 작아 포류(袍類)로 보기에 어색할 정도이다. 세 번째 납협주음의는 비단 재질로 길이 88㎝, 화장 97㎝, 앞품 68㎝, 진동 34.5㎝의 크기로 같이 출토된 액주음(腋注音) 옷 가운데 가장 작다. 다른 옷에 비하여 성글게 누벼져 있다. 남성의 간편한 옷차림용 복식이거나 여성의 복식으로 간주되고 있다.

유방령의는 겉은 갈색, 안은 흰색의 비단의 재질로 뒷길이 79㎝, 앞길이 93㎝, 화장 71㎝, 품 88㎝, 진동 38㎝의 크기이다. 앞길 이가 긴 전장후단형이며, 깃머리와 양 겨드랑이에 잔주름이 잡혔고 양옆은 트여있다.

납바지는 길이 74㎝, 허리둘레 108㎝, 허리 넓이 9㎝, 바지 부리 57㎝의 크기이다. 망자가 남성의 기혼자일 경우 여성의 복식이 함께 출토되는 경우가 있다. 납바지는 여성 복식으로 방한과 용변 처리에 합리적인 실용적 봉제법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여성 복식인 협바지는 길이 78㎝, 허리 넓이 11㎝, 바지부리 59㎝의 크기로 반쪽만 남아 있다. 밑바대가 넓고 옆이 트여 있으며, 맞주름이 없게 접혀 있다.

3점의 소매는 크기도 약간씩 다를 뿐만 아니라, 색깔도 달라 각기 다른 옷에 부착된 것이다. 3점의 소매 중 2점은 첩이(帖裏) 또는 주음의의 소매로 간주된다. 함께 출토된 이불은 삼베 7폭으로 된 홑이불로서 비교적 엉성한 바느질 부분으로 보아 염습용임을 알 수 있다. 원래 소렴과 대렴에 이불이 사용되는데, 출토된 이불은 한 점으로 크기로 보아 소렴금으로 간주된다. 모자의 재질은 공단과 명주이며, 크기는 높이 28㎝, 넓이 30㎝이다. 동시대 출토된 모자와 형태가 비슷하나 봉제 방법에 차이가 있다. 시신의 얼굴을 덮은 멱목은 길이 27㎝, 넓이 22.5㎝이고, 시신의 손을 쌌던 악수는 길이 26㎝, 넓이 11㎝의 크기이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이상의 유물이 출토된 분묘는 1991년에 수습된 것이다. 분묘의 피장자는 칠곡군 북삼읍 일대에 세거해 온 벽진이씨의 문중 성원으로 정확한 신원이 파악되지는 않았으나, 조선 중기 때의 인물이다. 출토된 만장의 기록을 통해 사망 연대가 조선 선조 18년(1585년)이고, 정삼품의 무관인 절충장군에 오른 인물이다. 따라서 출토된 유물은 조선시대 복식사의 분기점이 되었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전의 것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또한 출토된 유물을 통해서 당시 사대부 가문의 생활 문화 중 상례와 의생활에 대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양난 이전의 상례에서 사용된 염습의는 망자가 생존 시 착용하던 의복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벽진이씨 민묘에서 출토된 유물도 현상이나 보존 상태를 고려해 볼 때, 망자가 생존 시 사용한 의복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5.19 내용 수정 북삼면 -> 북산읍으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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