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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1872
한자 遺物
영어의미역 Remain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집필자 이희돈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에 전해 내려오는 유물.

[개설]

칠곡군에는 보물 6점, 사적 1점, 천연기념물 1점 등 국가 지정 문화재 8점과 유형 문화재 6점, 기념물 3점, 민속 문화재 1점 등 도 지정 문화재 10점, 문화재 자료 9점, 등록 문화재 2점 등 모두 29점의 문화재가 지정되어 있으며 그 외에 지정되어 있지 않은 유물도 다수 전해지고 있다.

[전적·서적·고문서]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이필주(李弼柱)가 소장하고 있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두시언해(杜詩諺解)』,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 『사성통해(四聲通解)』, 「조선 팔도 지도(朝鮮八道地圖)」가 있다.

1. 『용비어천가』

『용비어천가』는 목판본으로 한지에 인쇄되었으며, 규격은 외규 26×37.6㎝, 내규 22.5×34.5㎝이고 5책으로 되어 있다. 국왕이 판서 이원정(李元禎)[1622~1680]에게 하사한 책으로 총 125장이다. 그 내용은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고조할아버지 이안사(李安社)로부터, 아버지 이자춘(李子春)에 이르기까지 사대[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라 칭했음]와 태조·태종의 양대를 합하여 육세(六世)의 사적(事績)을 찬양한 노래로서 훈민정음을 처음 사용하였다.

2. 『두시언해』

『두시언해』는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를 한글로 해석한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의 약칭으로, 목판본으로 한지에 인쇄되었으며, 중국의 시와 국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책의 규격은 외규 18.7×30.2㎝, 내규 20.4×14.7㎝이다.

3. 『박통사언해』

『박통사언해』는 1677년(숙종 3)에 변섬(邊暹)·박세화(朴世華)·권대운(權大運) 등 12명이 당시 중국어 학습서인 『박통사(朴通事)』를 한글로 풀이한 책으로, 모두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성종최세진(崔世珍)[1468~1542]이 쓴 것을 다시 고증·수정해 간행한 것이다. 『박통사언해』는 1677년에 형조 판서 이원정과 그의 아들 참판 이담명(李聃命)[1646~1701]에게 각각 한 질씩 하사되고, 서문을 지은 이담명에게 별도로 편찬소에서 한 질을 보내,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는 총 세 질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편찬소에서 보내온 한 질은 고서 수집가가 빌려간 후 돌려주지 않고 세상을 떠나, 현재는 하사본 두 질만이 보관되어 있다.

4. 『사성통해』

『사성통해』최세진이 1517년(중종 12)에 편찬하였으며, 한자를 운(韻)에 의하여 분류 배열한 자서(字書)이다. 본래 2권 2책의 목판본인데, 원간본(原刊本)은 알 수 없고, 1614년(광해군 6)과 1656년(효종 7)에 간행한 중간본(重刊本)이 전해지고 있다. 소장자의 것은 효종(孝宗) 때 중간된 것이다. 책 표지 안쪽에 ‘순치 13년에 세자시강원 설서인 이원정에게 하사한 것[順治十三年 七月十八日 內賜世子侍講院說書 李元禎]’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자 해석은 주로 한문으로 하였지만, 당시의 우리말을 ‘금속호(今俗呼)’라 하여 기록한 수가 450여 어가 되어, 옛말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5. 「조선 팔도 지도」

「조선 팔도 지도」는 9장 1책의 채색 필사본 지도로, 규격은 27.5×33㎝이며, 한지에 그려져 있다. 조선 전도 한 장과 8도[경상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강원도·평안도·함경도·황해도]를 각 한 장으로 만들어 책으로 엮었다. 「조선 팔도 지도」가 언제 누구에 의하여 만들어졌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지명과 제작 형태로 보아 18세기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상세히 각 도 지역이 표시되어 있어 조선 시대의 지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한편 칠곡군 지천면 연호리 존경당(尊敬堂)에는 동래 정씨 족보 목판각 393장이 보존되어 있다. 보각(譜閣)은 원래 오곡에 있던 것을 1989년 2월 5일 이곳으로 신축·이전했는데 양졸재 실기 판각(養拙齋實記板刻) 43장도 같이 보존하고 있다.

[생활 유구 유물]

칠곡군 북삼읍 인평리[토지 구획 정리 지구] 야산에는 오래된 묘가 여러 기 있었는데, 1991년 5월 13일 이장(移葬) 작업 중, 수의(壽衣) 등 여러 점의 옷과 함께 부패되지 않은 시신이 나왔다. 이 묘의 명정(銘旌)에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이공지구(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 李公之柩) ···만력 을유 구월(···萬歷 乙酉 九月)’이라 명기(明記)되어 있어, 묻힌 사람은 중추부(中樞府)의 첨지사(僉知事)[정3품 당상관] 이씨(李氏)로서 1585년(선조 18) 이전의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파묘(破墓) 당시 두터운 회곽(灰槨) 안에는, 시신과 수의 등의 옷과 명정, 12폭의 만장(挽章)이 있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명정·칠성판·만장 외에도, 복식류 및 염습 제구(斂襲諸具)로 단령(團領) 1점, 직령(直領) 1점, 액주음(腋注音) 4점, 방령의(方領衣) 1점, 바지 2점, 소매 3점, 금(衾) 1점, 악수(幄手) 1쌍, 면모(面帽) 1점, 모자(帽子) 1점 등 총 16점이 나왔다. 이 유품들은 경북 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동안 임진왜란 전의 유품들이 발견된 것은 흔치 않아, 이 유물들은 당시의 시속 교직물(屍俗交織物)과 복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칠곡군 지천면 연호리 동래 정씨 문중에는 약 400년 전 임진왜란 때 만들어진 비단 주머니가 가보로 전승·보존되고 있다. 그리고 고고 자료 유물로 이필주의 가문에서 보유하고 있는 이원정·이담명 부자의 유품이 있다. 유품으로는 옥로 풍잠(玉鷺風簪)[풍잠은 망건의 앞쪽에 부착하여 갓이 넘어가지 않게 하는 장식품], 수정(水晶)과 수산호(水珊瑚) 갓끈 각 1점, 호박 주영(珠纓)[구슬을 꿴 갓끈] 1점, 침(針) 1점, 호패(號牌), 장도(粧刀), 요대 장식(腰帶裝飾), 옥관자(玉貫子) 2점이 있다.

[불상·불화]

1. 칠곡 노석리 마애불상군

칠곡 노석리 마애불상군(漆谷 老石里 磨崖佛像群)은 통일 신라 초기의 불상들로 거대한 바위 면에 얕게 돋을새김을 한 마애불상이다. 바위 면의 중심에 본존(本尊)과 협시(脇侍)의 삼존불(三尊佛)을 두고 삼존과 별도로 우협시 옆에 불좌상(佛坐像)이 배치된 특이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본존불은 통견(通肩)의 좌상으로 큼직하고 높은 육계, 둥글고 박력 있는 얼굴, 작은 이목구비, 큼직한 어깨와 짤막한 상체, 맨살의 오른팔과 가슴까지 든 손 등 다소 생경하지만 뛰어난 솜씨의 불상이다. 원형의 두광(頭光)이 크고 뚜렷하게 묘사되었으며 주변은 화염문(火炎文)으로 화려하게 채웠다.

좌협시 보살상(左脇侍 菩薩像)은 보주(寶珠)를 새긴 특이한 보관(寶冠), 본존을 향하여 측면으로 바라보는 얼굴과 자세, 풍만한 체구, 왼손에 연꽃 가지, 오른손에 보주를 잡고 있는 수인(手印), 뾰족한 대좌(臺座)와 연꽃무늬 등 경주 남산 신인사(神印寺)의 동방 보살상과 매우 비슷하다. 우협시 보살상(右脇侍 菩薩像)은 좌협시 보살상과 흡사하지만 다리를 발목에서 교차시킨 교각 자세(交脚 姿勢)의 특징이 가장 독특하다.

단독의 불좌상은 삼존불의 본존상과 거의 흡사하지만 본존불만큼 풍만하지는 않으며 안락좌(安樂坐)의 특이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날카로운 잎은 연속시킨 연화문이 다리 아래로 표현되어 연화화생(蓮花化生)의 의미를 보이는 듯하다. 삼존상과 함께 단독의 상이 함께 등장하는 점이나 교각 자세와 안락좌 등이 나타나는 점, 고식의 원형 두광 등 대체로 통일기 초의 경향을 보이면서 중국 수·당 초기의 경향과도 비교되는 신라 불상 가운데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든 독특함을 지닌 불상군이다. 1979년 5월 2일 보물 제655호로 지정되었다.

2. 칠곡 송림사 목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

송림사 대웅전에 봉안된 칠곡 송림사 목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漆谷 松林寺 木造 釋迦如來 三尊 坐像)은 1657년(효종 8)의 조성 연대가 확인된 목불이다. 17세기 중엽의 전형적인 불상 양식을 보여 주고 있는 상으로 협시의 지물과 보관은 후대에 보수한 것이나 대체로 조성 초기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3구의 불상이 대체로 동일한 양식 성향을 보여 간략한 옷 주름 표현과 약간의 부피감을 지니는 불신(佛身) 표현, 안정감 있게 넓게 잡은 하체 등 적당한 크기의 불두와 함께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뛰어난 형태를 보인다. 목조 불상으로서는 양감이 다소 약하고 괴체적인 편에 속하지만 조성 연대가 확인되어 조선 후기 목조 불상의 기준작이 될 수 있는 가작이라 하겠다. 2009년 2월 23일 보물 제1605호로 지정되었다.

3. 칠곡 송림사 석조 아미타여래 삼존 좌상

송림사 극락전에 봉안된 칠곡 송림사 석조 아미타여래 삼존 좌상(漆谷 松林寺 石造 阿彌陀如來 三尊 坐像)은 본존에서 발견된 복장 조성기에 따라 1655년(효종 6)의 정확한 연기를 지닌 상이다. 현재는 두터운 개금과 후대 보수로 인해 세부적인 분석은 어렵지만 대체로 조선 후기의 안정된 구도를 보이는 상이다. 본존은 상체에 비해 하체가 다소 약한 듯하고 다리 앞으로 부채꼴 주름이 길고 높은 편이다.

불두는 육계 표현은 없으나 정상 육계, 중간 육계가 있고 나발로 덮었다. 어깨도 약하게 각진 형태에 오른 어깨로 대의 자락을 걸친 통견이다. 내의는 가슴 아래로 굵은 띠로 표현되었고 띠 매듭은 없다. 양손은 다리에 얹어 촉지인을 하고 있다. 좌우 협시의 양식도 본존과 흡사해서 민머리의 지장보살 불두가 본존의 불두와 흡사하다. 2009년 2월 23일 보물 제1606호로 지정되었다.

4. 송림사 명부전 목조 시왕상과 제상

송림사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 삼존상과 시왕상 및 제상을 포함한 22구 또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송림사 명부전 목조 시왕상과 제상(松林寺 冥府殿 木造 十王像과 諸像)은 단순해 보이지만 얼굴과 손의 세부적인 표현에 있어서 사실성이 돋보이고 신체의 비례와 배치 구성력 등이 뛰어나다. 본존에 해당하는 지장 삼존상 역시 보살을 주존으로 하는 지옥계 도상으로서 독특한 예에 속하여 불교 신앙 형태와 결부되는 중요한 예라 하겠다. 지장보살의 협시인 도명존자(道明尊者)와 지지보살(地持菩薩)의 협시에서 발견된 복장 유물을 통하여 조성 연대와 참여한 화원을 알 수 있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2004년 10월 14일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360호로 지정되었다.

5. 송림사 명부전 석조 삼장 보살 좌상

송림사 명부전 석조 삼장 보살 좌상(松林寺 冥府殿 石造 三藏 菩薩 坐像)은 본존인 천장보살상(天藏菩薩像)과 우협시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 좌협시 지지보살상(持地菩薩像)의 3구로서 1655년의 정확한 연기가 알려진 불상이다. 본존인 천장보살상은 부처가 깨달은 후 바라나시의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와 중생들에게 최초로 설법할 때의 수인인 전법륜인(轉法輪印)의 수인을 하고 있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양쪽 어깨를 덮어 내린 통견의 천의를 입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길게 흘러내린 모습이다.

좌협시인 지지보살상 역시 보관을 쓰고, 통견의 천의를 입고, 곱슬거리는 긴 머리를 어깨까지 흘러내린 모습이다. 우협시인 지장보살상은 짧게 깎은 민머리에 통견의 천의를 입고 있다. 2004년 10월에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71호로 지정되었다.

6. 칠곡 위봉사 석조 보살 좌상

칠곡 위봉사 석조 보살 좌상(漆谷 威鳳寺 石造 菩薩 坐像)은 불두와 불신을 연결한 거신주형(擧身舟形) 광배를 갖춘 고려 시대 불상으로 화강암으로 제작되었다. 이마 위로 둥글게 돌아가며 말린 보계(寶髻)의 모습이 마치 연주문(連珠文)처럼 열을 이루며 촘촘히 표현되어 있고, 그 위로 턱을 두고 보관을 쓰고 있다. 우견편단의 천의를 걸치고 있으며 옷 주름은 어깨에서 무릎까지 촘촘하게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왼손은 손바닥을 가슴 쪽으로 올리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놓고 있으며 양 손목에 팔찌가 조각되어 있다. 2007년 1월 8일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394호로 지정되었다.

7. 칠곡 도덕암 나한전 내 제상

칠곡 도덕암 나한전 내 제상(漆谷 道德庵 羅漢殿 內 諸像)은 본존인 석가모니불상과 좌우협시인 제화갈라보살상, 미륵보살상, 그 좌우에 각각 8구씩 16명의 나한상(羅漢像)과 2구의 사자상(使者像)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16구의 나한상은 한쪽 무릎을 세우거나 혹은 결가부좌를 한 좌상의 모습으로 후대에 다시 칠을 하긴 했으나, 안고 있는 봉황, 호랑이, 수박을 올린 소반, 책 및 들고 있는 지물과 얼굴 표정이 매우 다양하다.

2구의 사자상은 직부 사자(直符 使者)와 감제 사자(監濟 使者)로 알려져 있다. 사적기(寺蹟記)에 의하면 1632년(인조 10)에 훈장 선사(訓奬 禪師)가 나한전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2006년 6월 29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09호로 지정되었다.

8. 영오리 석불 입상

칠곡군 지천면 영오리 먹골 마을 앞 공터에는 영오리 석불 입상(永梧里 石佛 立像)이 있다. 높이 175㎝, 폭 120㎝, 두께 20㎝ 가량 되는 화강암 판석에 새긴 입상으로 머리와 상체, 하체 세 부분으로 부러져 나뉘어졌던 것을 근년에 주변을 정비하고 콘크리트로 기단을 조성하여 다시 세웠다. 석재의 두께에 비해 고부조인 편이고 신체 부위에 따라 부조 두께를 달리하고 있다.

불두는 둥근 방형의 얼굴에 육계가 높고 둥글며 귀도 길게 내렸다. 불상의 조각을 보면 목에는 삼도(三道)가 분명하고 통견의 법의는 전면에 타원형의 물결무늬 주름으로 표현했으며 오른손은 가슴 앞에 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드리워서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의 수인을 하고 있다. 훼손이 심하고 보수 과정에서 변형도 있지만 대체로 균형 잡힌 자세를 보이는 수작으로 나말 여초의 양식으로 보인다.

9. 금곡사 불상

금화리 금곡사 내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금곡사 불상(金谷寺 佛像)은 석가상으로 머리는 나발이며 불신에 비하여 손발이 크고 통견의를 걸친 반가부좌상이다. 옷 주름은 계단식 주름 몇 가닥으로 간략하게 표현되었고 내의 역시 수평의 돋을선이다. 다리 앞으로 부채꼴 주름이 크게 표현되어 있다. 간략한 대의 표현과 방형의 불두 등으로 보아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불상으로 추정된다.

10. 용화사 석불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용화사 법당 내에 위치하고 있는 용화사 석불(龍華寺 石佛)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방형의 연화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불신 전체에는 흰색 페인트를 덧칠해 놓았다. 양손은 가지런히 양 무릎 위에 올려놓았는데 후대에 보수한 것으로 보인다. 불의는 보수 때문인지 두터운 편이며 옷 주름도 양다리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상호의 표현이나 신체의 양감, 방형 대좌에 새겨진 연꽃의 조각으로 보아 신라 하대의 불상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용화사 법당 안에는 이 불상 외에 보살상 1구와 불좌상 1구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보살상은 타원형의 화강암 판석에 부조된 보살 좌상으로 역시 후대에 채색된 것으로 원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다. 본존불의 우측에는 또 다른 불좌상 1구가 봉안되어 있는데 앞의 불상들보다 소형으로 근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11. 칠곡 도덕암 몽계당 선의 대사 진영

칠곡 도덕암 몽계당 선의 대사 진영(漆谷 道德庵 夢溪堂 善誼 大師 眞影)은 좌측 상단의 적색 바탕 위에 묵서(墨書)로 ‘몽계당 대선사 선의 진영(夢溪堂 大禪師 善誼 眞影)’ 10자가 쓰여 있어 몽계당 선의 대사의 진영임을 알 수 있다. 진영은 당시의 전형적인 구도법에 따라 전신 좌안(全身 左顔)을 취하고 있다. 노승(老僧)의 얼굴 세부와 정신세계가 비교적 잘 표현되어 있으며 1863년(철종 14)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 연기가 남아 있어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2006년 6월 29일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387호로 지정되었다.

[발굴 유물]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고분군(福星里 古墳群)은 1960년대에 발굴 조사된 복성리 대옹총(大甕塚)을 비롯하여 주변에 300여 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는데, 그 중 약목리 대옹총은 5세기 후반의 신라 고분으로 도굴로 인하여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주변에는 굽다리 접시 편[高杯片], 긴 목 항아리 편[長頸壺片]과 같은 삼국 시대 유물들이 흩어져 있다.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고분군은 삼국 시대 고분으로 중앙 고속 도로 건설로 인해 22기의 돌덧널무덤[石槨墓]을 발굴하였는데, 토기를 비롯하여 금동제 귀걸이, 철기로는 낫, 손칼, 화살촉, 쇠종방울[鐵鐸] 등이 출토되었다.

칠곡군 지천면 영오리 고분군은 구미~금호 간 경부 고속 도로 확장 사업으로 인해 40기의 삼국 시대 무덤을 비롯하여 고려 시대 묘 등이 발굴되었는데, 짧은 굽다리 접시[短脚 高杯]와 청동제 방형 띠꾸미개[銙板], 타원형 과판을 기본으로 하는 통일 신라형 대금구(帶金句)와 함께 인화 기법에 의한 토기류도 출토되었다.

칠곡군 지천면 용산리 고분군은 구미~금호 간 고속 도로 확장 공사 때 일부 조사되었는데 6세기에 속하는 소형의 돌덧널무덤과 돌방무덤[石室墓]이 확인되었다. 돌방무덤에서는 인화 기법으로 시문된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고분군은 통일 신라 시대 고분으로 돌덧널무덤[8호 묘] 1기가 조사되었는데, 돌덧널[石槨] 중앙에서 날의 끝을 남쪽으로 둔 쇠낫[鐵鎌]이 부장되어 있었고, 부식토에서 연질 파수(把手), 연질 토기 바닥 편이 수습되었다.

[의의와 평가]

칠곡군의 지정 문화재 중에는 특히 전통 사찰의 석탑, 불상 등 불교 관련 유물이 가장 많다. 이처럼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탄압받았던 조선 시대에도 불교 유물이 보존되었던 것은 국방의 요지였던 칠곡 지역에 호국 불교의 전통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3.03 내용 중 유적명 변경 기성동 삼층석탑->기성리 삼층석탑
2014.03.03 내용 중 문화재 명칭 변경 노석동 마애불상군->노석리 마애불상군
2013.08.06 [비석] 수정 <변경 전>통정대부행용궁현감한공전규치세송덕비(通政大夫行龍宮縣監韓公銓奎緇世頌德碑) <변경 후>통정대부용궁현감한공전규치세송덕비(通政大夫龍宮縣監韓公銓奎緇世頌德碑)
2013.08.06 [비석] 수정 <변경 전>참봉한공제동치세선덕비(參奉韓公薺東緇世先德碑) <변경 후>참봉한공제동계세선덕비(參奉韓公薺東繼世善德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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