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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1940
한자 陳秉基
영어음역 Jin Byeonggi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윤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덕산동 588[현 덕산리]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6년 3월 13일연표보기
몰년 1935년 11월 5일연표보기
본관 여양

[정의]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896년 3월 13일 약목면 덕산동[현 덕산리]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으며 1920년 이후, 공산당 노동운동을 통한 독립을 추구하다 옥고를 치렀다.

[활동사항]

대구 협성중학(協成中學)을 거쳐, 1911년 일본 도쿄로 건너간 후 거기서 중앙대학(中央大學)을 다니다가 1914년 귀국하여 농사를 지었다. 1922년 1월 무산자 동지회(無産者 同志會)를 발기하여 조직하고 다음 해 1923년 3월에는 전조선청년당대회(全朝鮮靑年黨大會)에 참가하였다. 같은 해 6월 코민테른[국제공산당 제3인터내셔널] 꼬르뷰로[高麗局][조선공산당 중앙총국] 국내부가 설치될 때, 평양야체이카[세포: 단위 조직]의 책임자가 되어 평양노동동맹회(平壤勞動同盟會) 결성에 참가하였다. 같은 해 9월 국내부 조직이 발각되어 체포되어 12월에 평양복심법원에서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언도받았다가 1924년 1월에 징역 9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4년 9월 출옥한 후에도 다시 평양노동동맹회 집행위원으로서 1925년 3월의 평양 인쇄직공 파업 등을 적극 후원하였다. 1925년 4월 조봉암(曺奉岩), 김찬(金燦), 박헌영(朴憲永) 등과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를 조직하고, 같은 해 10월 조선노농총연맹(朝鮮勞農總聯盟)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으나 11월에 조선공산당 조직이 발각되면서 신의주경찰서에 체포되어, 1928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1년 2월 만기 출옥한 후에도 계속 조선공산당 재건에 노력하다가 1935년 11월 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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