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293
한자 高相敦
영어음역 Go Sangd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기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1948년연표보기
몰년 1979 년연표보기
아내 이희수
상훈 1977 청년대상|체육훈장청룡상

[정의]

청주에서 활동한 산악인.

[학력]

주성초등학교청주중학교, 청주상업고등학교(현 청주대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전매청 청주연초제조창에 근무하면서 청주대학교 경영학과(야간) 2년을 수료하였다.

[활동사항]

1970년 3월 대한산악연맹 회원이 되어 활동하다가 한국일보사와 대한산악연맹이 공동으로 후원한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대장 김영도, 대원 19명)의 제주도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1977년 9월 15일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에베레스트산(Everest)[8,850m] 등정에 성공하였다.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1차 정상공격은 악천후와 산소부족으로 정상을 100m 정도 남겨두고 하산한 후 김영도 대장으로부터 2차 공격명령을 받고 셀파(Sherpa) ‘펨바 노르부’와 함께 새벽 5시 30분에 제5 캠프를 출발하여 눈사태의 위기와 세찬바람 그리고 영하 27도의 추위를 견뎌내며 7시간 20분의 사투 끝에 9월 15일 낮 12시 50분(한국시간 오후 4시 30분)에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를 정복하였다. 등정을 마치고 정상에서 무전을 통해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라고 소리친 고상돈의 모습은 산 사나이로서의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후 대한산악연맹 충청북도지부 이사로 재직하면서 1979년 북아메리카 최고봉인 알래스카산맥의 매킨리산 원정대의 대장으로 정상등정에 성공하고 하산하던 중 이일교(당시 청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재학) 대원과 함께 추락하여 사망했다.

[묘소]

제주도의 한라산 해발 1,100m 고지에 있으며 고(故) 고상돈대원 기념사업회가 조직되어 해마다 추모사업을 벌이고 있다.

[의의와 평가]

고상돈의 에베레스트 정복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정상에 선 산악인이며, 우리나라 산악인의 의지를 전 세계에 과시한 인물이다. 이로 인해 한국은 1953년 영국의 ‘애드먼드 힐라리’가 최초로 정상을 등정한 이래 8번째 국가가 되었고, 아시아에서는 4번째, 등반팀으로는 14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국가가 되었다.

또한 세계에서 처음으로 몬순(계절풍) 기간인 9월중에 등반한 것과 21일간의 고속 캐러밴 등 여러 가지 기록을 남겼으며 2002년 6월 에베레스트산(Everest)[8,850m]에서 청소활동을 벌이던 단체에 의해 고상돈 원정대의 깃발이 발견되었는데, 깃발에는 '77 K.E.E(77: 등반연도, K.E.E: Korea Everest Expedition)'라고 씌어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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