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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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北接農民軍 |
영어음역 | Bukjeop Nongmingun |
영어의미역 | Bukjeop Farmers' Army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신영우 |
[정의]
1894년에 손병희(孫秉熙)[1861~1922]의 지휘 아래 충청남도 논산에서 전봉준(全琫準)의 남접농민군과 합세하여 우금치전투에 참여했던 동학농민군.
[개설]
1894년에 독자적으로 활동한 남접(南接)농민군과는 달리 동학 교단의 지시를 받고 무장봉기해서 충청도, 경상도,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하고, 통령 손병희의 지휘 아래 논산에서 전봉준의 남접농민군과 합세하여 우금치전투에 참여했던 동학농민군이다.
[역사적 배경]
동학은 1890년대 초에 와서 입도자가 늘어나고 유능한 인물이 많이 들어와 교세가 확대되었다. 동학이 포교를 공인받기 위한 교조신원운동을 전개하면서 보국안민과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 운동의 성격을 띠게 되자 교단의 지도보다 독자적으로 강경하게 활동하는 세력이 나타났다. 대접주 서장옥과 전라도의 동학교도가 강경파의 중심이었다.
고부의 농민항쟁을 계기로 일어난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은 동학 2세교주 최시형과 사전 논의 없는 봉기로 시작되었는데 무장봉기 세력은 서포(서장옥계열) 또는 남접으로 불렀고, 교단의 가르침을 따르는 세력은 법포(法憲, 최시형의 지침에 순응하는 포접조직) 또는 북접으로 불렀다.
[발단]
동학농민군의 1차봉기는 서포 조직이 일으킨 것으로 전라도의 전봉준 김개남(金開南) 김덕명 포가 중심이었고, 충청도에서는 회덕에서 호응하였다. 청주의 동학조직은 북접의 주요 지도자인 손천민(孫天民) 대접주의 포가 중심이라서 1차봉기에는 합세하지 않았다. 일본군이 경복궁과 경군 병영을 기습해서 궁궐을 장악하고 경군을 무장 해제하는 사건이 일어난 7월 말 이후 동학교단은 무장봉기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경과]
10월 말 최시형의 기포령에 따라 무장봉기한 북접농민군은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경기도, 황해도 일대에서 지방관아를 점거하고 무기와 군수미, 군수전을 확보한 후 충청도 보은과 영동 황간에 집결하였다. 북접농민군은 그 과정에서 일본군과 관군 그리고 민보군의 반격을 받게 된다. 청주에서도 손천민 서장옥포가 중심이 되어 청주성 공격을 시도했다가 남영병의 반격을 받아 퇴각하였다. 영동에 집결한 북접농민군의 주력부대는 통령 손병희의 지휘 아래 논산에 가서 전봉준의 남접농민군과 합류하여 공주 우금치공격에 참여하였다.
[결과]
우금치공격이 실패하자 북접농민군은 장수, 무주와 영동을 거쳐 보은으로 돌아왔다가 보은, 북실에서 일본군과 상주 민보군의 기습을 받아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 후 대병력의 위세를 잃고 소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