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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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年運動 |
영어의미역 | Youth Movem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3·1운동 직후 경상북도 칠곡군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봉건 질서 타파와 계몽운동을 펼친 청년들의 활동.
[개설]
청년이라 함은 특정한 계급이나 신분을 의미하는 범주화된 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범위 설정에 다를 수 있긴 하지만 일정한 범위에 속하는 연령층을 의미한다. 생물학적 세대적 특성을 가진 청년이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의 주체로 전환하는 데에는 서구와 식민지와는 다른 차이를 가지고 있다. 서구의 청년운동은 자본주의가 발생·발전하던 시기에 청년들이 처한 저임금 상태를 개선하려는 노력에서 발생하였으며, 식민지에서는 봉건적 질서를 타개하고, 동시에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에서 발생하였다.
[청년운동의 시작과 특징]
한국의 청년운동은 개항 이후 개화파와 같이 근대화를 추구하는 세력들에 의해서도 추진된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근대적이면서도 본격적인 발생은 3·1운동 이후부터였다. 3·1운동 직후 전국 각지에서 지식인과 지역 유지들이 주도하는 청년(회) 단체가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져 봉건 질서 타파와 근대 계몽을 전망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렇지만 청년운동은 3·1운동 이후 세계적인 사상의 흐름과 조우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게 되면서,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분화되어 나갔다. 1924년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을 계기로 국내 청년운동은 사회주의 계열이 점차 주도해 나가는 특성을 보였다. 특히 농민운동이나 노동운동이 발달하지 못한 지역에선 청년운동이 농민·노동자와 대중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활동을 주도해 나가기도 하였다.
[왜관의 청년운동]
왜관에서도 1920년 8월 15일에 왜관청년회가 창립되어 활동에 들어갔다. 1921년에 왜관청년회는 자체 회관을 건축하였고, 1922년에 청년회관 내에 동창학원과 1923년에 여자야학을 개설하여 보통학교에 취학 못한 아동들을 대상으로 근대 교육을 실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강연회, 체육대회, 음악회 개최 등을 통해 근대 의식 계몽 활동과 지역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칠곡에는 왜관청년회를 비롯하여 왜관형평청년회, 왜관금강구락부, 약목청년회, 인동청년회 등이 결성되어 활동하였다. 1926년 7월에는 왜관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칠곡청년연맹의 결성을 주도하였다. 그 후 칠곡청년연맹은 칠곡청년동맹으로 조직을 변경하였다. 왜관의 청년운동은 왜관의 사상운동, 농민운동, 교육운동을 주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