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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난을 겪으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A030102
분야 지리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순하

1931년 동경에서 태어난 박화자 할머니는 1946년 3월 13일 타지에서의 외로움 때문에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한국에 들어온 그녀는 대일청구권이라는 제약으로 일본에서 벌어온 돈을 쓸 수 없게 되자,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생계는 어머니가 일본에서 입던 한국 옷을 팔아 양식을 구하는 것으로 이어갔고, 그녀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으로 귀국을 하면서 스스로 부모님의 생계를 책임지겠다고 했던 다짐은 변함이 없었으나, 조선의 지독한 가난은 공부도, 취업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어느덧 성인이 되어 시집 갈 나이가 되자 이곳저곳에서 중매가 들어왔지만,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던 그녀는 부모님을 두고 시집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녀가 부모님 노후가 걱정이 되어 시집을 가지 못한다는 소문이 퍼졌고, 어느 종갓집에서 중매가 들어왔다.

신랑의 나이는 처음에 40세라고 했으나, 할머니의 가족에게 속인 나이였고, 원래 나이는 50세였다. 그러나 집 한 채와 논 네 마지기(약 800평), 그리고 밭 300평을 준다는 조건으로 할머니는 나이 열여덟 살에 광주이씨 집으로 시집을 오게 된다.

[정보제공]

  • •  박화자(여, 1931년생, 매원리 거주, 부녀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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