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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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칠곡군은 도로 및 철도 교통의 중심지이다. 조선 시대에는 육로뿐만 아니라 수로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당시의 육로 교통은 보행 및 길마 수송이었으며, 영남 대로(嶺南大路)는 전국 9개 간선 도로(幹線道路) 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서울에서 한강 나루를 건너, 용인·충주·문경·상주·대구·밀양을 거쳐 동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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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 미군의 병참 부대. 캠프 캐롤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왜관읍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다.’ 이렇게 대답하면 너무나 상식적인 대답이 될 것이다. 캠프 캐롤은 칠곡군 왜관읍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 미군의 병참기지의 일종이다. 1959년에 부대 조성 공사를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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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을 시조로 하고 정수['錘'는 '추'로도 읽힌다)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 성씨. 정씨의 근원은 서기 32년(유리왕 9) 육부(六部) 중의 진지촌장(珍支村長)인 지백호(知伯虎)를 정씨(鄭氏)로 사성(賜姓)한 데서 비롯되었다 한다. 시조는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으로 하나 세계(世系)가 확실하지 않아 고려에서 보윤호장(甫尹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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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물품의 시간적 가치와 공간적 가치를 창출하는 제반 활동인 물류의 현황과 발전. 칠곡을 물류 중심도시라고 한다. 이런 별칭을 얻은 이유는 무엇이고 과연 물류 중심도시라는 말을 들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최근 많은 기업들이 물류비 절감이 경영혁신의 최고 과제로 삼으면서 칠곡군이 각광을 받고 있다. 전국 제일의 물류 중심지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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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 동일한 인물을 시조(始祖)로 하면서 집성 세거한 성씨(姓氏). 성(姓)은 혈족 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으로 이것이 언제부터 발생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미 인류 사회가 시작되는 원시 시대부터 이러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원시 사회(原始社會)는 혈연을 기초로 하여 모여 사는 집단체로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처음에 모계(母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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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칠곡을 거쳐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던 간선 도로. 서울을 영남 지방과 연결하는 간선 도로이므로 영남 대로(嶺南大路)라고 하였다. 노폭은 대체로 4~8m이다. 노면은 황토로 피복되었으며, 비탈길 등의 일부 구간은 박석(薄石) 포장이었다. 영남 대로에 설치되었던 역원은 아래와 같다. 다부역(多富驛)은 소야고개 아래의 역이었고, 소야원(所也院)은 여행하는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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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가천리에 있는 재실. 운곡재는 본관인 동래(東萊)인 정사주(鄭師周)의 추모하는 장소로 후손들이 건립한 재사이다.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가천리 갓골 위쪽 마을인 상지마을 중간쯤에 위치한다. 마을 복판의 평지에 방형으로 터를 잡고 돌담을 돌려 일곽을 구성한 뒤 전면 솟을삼문을 내고 남동향으로 재사를 배치했다. 재사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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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칠곡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본과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다. 일본은 전쟁에 육군 15만, 수군 9천여 명을 투입하여 7년간 조선을 유린하였다. 일본의 침략은 1592년 4월 14일 부산성 침략에서 출발하였다. 일본군의 선봉대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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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칙(士勅), 호는 죽우(竹寓).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고 정절공파 18세 정여강(鄭汝康)의 아들 양졸재 정수(鄭錘)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동래정씨의 후손이다. 금양(錦陽) 정속(鄭涑)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월성손씨, 부인은 달성서씨이다. 1796년(정조 20)에 칠곡 지역에서 태어나 1844년(헌종 10)에 생원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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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요신(堯臣), 호는 낙와(樂窩). 육부촌장 지백호(智伯虎)의 후예로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나 세계(世系)가 확실하지 못하여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고 정절공파 18세 정여강(鄭汝康)의 아들 양졸재 정수(鄭錘)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동래정씨로 칠곡군 지천면 연호리와 오산리, 동명면 학명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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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영백(英伯), 호는 미강(嵋岡). 동래정씨는 육부촌장 지백호(知伯虎)의 후예로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나 세계(世系)가 확실하지 못하여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고 정절공파 18세 정여강(鄭汝康)의 아들 양졸재 정수(鄭錘)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동래정씨 후손으로 겸재(謙齋) 정익동(鄭翊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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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칠곡 지역 출신의 유생.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여림(汝霖). 동래정씨는 육부촌장 지백호(知伯虎)의 후예로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나 세계(世系)가 확실하지 못하여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고 정절공파 18세 정여강(鄭汝康)의 아들 양졸재 정수(鄭錘)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동래정씨 후손이다. 사빈(泗濱) 정봉령(鄭鳳齡)의 증손이고 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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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숙윤(叔潤). 동래정씨는 육부촌장 지백호(知伯虎)의 후예로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나 세계(世系)가 확실하지 못하여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고 정절공파 18세 정여강(鄭汝康)의 아들 양졸재 정수(鄭錘)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동래정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정유식(鄭惟軾)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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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칠곡 지역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윤보(潤甫)이고 호는 이계(伊溪)이다. 육부촌장 지백호(知伯虎)의 후예로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한다. 세계(世系)가 확실하지 못하여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고 정절공파 18세 정여강(鄭汝康)의 아들 양졸재 정수(鄭錘)를 칠곡 입향조로 한다. 칠곡군 지천면 연호리와 오산리, 동명면 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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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유생. 정수(鄭錘)['錘'는 '추'로도 읽힌다)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평보(平甫), 호는 양졸재(養拙齋). 동래정씨는 육부촌장 지백호(知伯虎)의 후예로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나 세계(世系)가 확실하지 못하여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한다. 정절공파 18세 정여강(鄭汝康)의 아들로 동래정씨의 칠곡 입향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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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열녀. 본관이 전주(全州)인 청휘당(淸暉堂) 이승(李承)의 딸이고, 본관이 동래(東萊)인 양졸재(養拙齋) 정수(鄭錘)의 아내이다. 부유한 집에서 성장하여 부유한 집으로 시집갔으나 화려함을 일삼지 아니하고 힘든 일을 피하지 아니하였다. 임진왜란 때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예(禮)를 다하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날 즈음에는 아들을 가르침에 있어 법도가 있었다.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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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응로(應老), 호는 칠하(七下). 동래정씨는 육부촌장 지백호(知伯虎)의 후예로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나 세계(世系)가 확실하지 못하여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고 정절공파 18세 정여강(鄭汝康)의 아들 양졸재 정수(鄭錘)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동래정씨 후손이다. 아버지는 회와(晦窩) 정용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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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충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치상(致祥), 호는 행정(杏亭). 육부촌장 지백호(知伯虎)의 후예로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나 세계(世系)가 확실하지 못하여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는 동래정씨 후손이다. 좌찬성 정구(鄭矩)의 후손이고 정사주(鄭師周)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광주김씨, 부인은 수성나씨·서산유씨이다. 일찍이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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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첨(景瞻), 호는 관수재(觀水齋). 육부촌장 지백호(知伯虎)의 후예로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나 세계(世系)가 확실하지 못하여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고 정절공파 18세 정여강(鄭汝康)의 아들 양졸재 정수(鄭錘)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동래정씨 후손이다. 이용당(易容堂) 정한필(鄭翰弼)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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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맹양(孟陽). 육부촌장 지백호(知伯虎)의 후예로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나 세계(世系)가 확실하지 못하여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고 정절공파 18세 정여강(鄭汝康)의 아들 양졸재 정수(鄭錘)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동래정씨 후손이다. 정유점(鄭惟漸)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밀양박씨, 부인은 풍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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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칠곡 지역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건(子建)이다. 칠곡 입향조는 행정(杏亭) 정여강(鄭汝康)의 둘째 아들 양졸재(養拙齋) 정수(鄭錘)이다. 동래정씨는 칠곡군 지천면 연호리와 오산리, 동명면 학명리에 집성세거하였다. 정희량은 정수의 손자이고 낙은(洛隱) 정천유(鄭天濡)의 아들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봉양함에 어김이 없었다. 어머니가 중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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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석축 산성(山城). 팔공산의 최고봉인 비로봉[1,192m]에서 시작된 산맥의 서북쪽 15㎞ 지점의 끝 부분에 위치한 가산(架山)은 평정봉으로서 산정부에는 상당히 넓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곳 정상에 위치한 가산산성은 서북쪽으로 천생산성과 유학산(遊鶴山)[해발 839m]에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다부동에 접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