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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982
한자 廣州李氏
영어의미역 Gwangju Yi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왜관읍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헌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웃갓]지도보기
집성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매원리|지천면 신리[웃갓]
입향시기/연도 조선 전기/1489년경
성씨시조 이당(李唐)
입향시조 이지(李摯)

[정의]

이당을 시조로 하고 이지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 성씨.

[개설]

이자성(李自成)은 칠원(漆原)에서 세거한 호족(豪族)의 후예(後裔)이다. 신라 내물왕 때 내사령(內史令)을 지냈고 후손이 신라역조(新羅歷朝)에서 벼슬을 하였는데 신라가 고려에 손국(遜國)하자 고려에 불복하고 절의를 지켰으므로 고려 태조가 강계(降階)하여 회안(淮安)의 호장(戶長)으로 삼았다. 그 후 회안(淮安)의 이속(吏屬)으로서 세계(世系)를 이어오다가 석탄공파(石灘公派)는 이한희(李漢希)를 1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를 계대(繼代)하고, 후손인 이당(李唐)이 광주(廣州) 유수(留守)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5형제가 각각 1세조(一世祖)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 중에 이원령(李元齡)은 충목왕(忠穆王) 때 문과에 급재하여 벼슬이 판봉상사(判奉常事)에 이르렀는데, 1368년(공민왕 17) 신돈(辛旽)의 비행을 논박(論駁)하다가 화(禍)를 피해 영천(永川)에 사간(司諫) 최원도(崔元道)의 집에서 피신(避身), 신돈이 처형된 후 복관(復官)이 되었다. 그 후 자손이 대대로 영화(榮華)를 누리고 문호가 크게 번성(繁盛)했으므로 후손들이 이원령을 중흥시조(中興始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繼承)하고 있다. 본관(本貫)은 조상(祖上)의 세거지 회안(淮安)이 고려 성종(成宗) 때 광주(廣州)로 개칭되었으므로 광주 이씨(廣州李氏)라 하였다.

[입향 경위]

좌통례공(左通禮公) 이극견(李克堅)이 조선 연산군 초기에 성주목사로 재임시 차자가 부친과 함께 따라와서 관내의 만석 부호(富豪)인 영천 최하공(崔河公)의 무남독녀 사위가 되었는데, 일찍 사망하여 자손이 그대로 웃갓에서 살게 되니 곧 승사랑(承仕郞) 이지(李摯)이며 칠곡에 입향한 중조(中祖)이다. 그 후손이 정착하여 450여 년 동안 번성하여 돌밭, 매원, 웃갓, 한실 등지에서 집성을 이루어 거주하였다. 승사랑공(承仕郞公)의 장자는 진사공 이덕부(李德符)이고, 차자는 현감공 이인부(李仁符)이며 장자 진사공의 증손(曾孫)은 공조참의를 지낸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이고 이윤우(李潤雨)는 영남 유림의 대가(大家)이다.

[현황]

광주 이씨로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 및 법조계·학계 등에서 많은 후손들이 활약하고 있으나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인구주택총조사 때의 「성씨 및 본관 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칠곡군 내에 450여 가구에 1,200여 명이 살고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동산재[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03호]와 묵헌 종택[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245호],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칠곡 해은 고택[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제178호]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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